문화는 현실의 거울이며 문학은 인간과 삶을 반영한다. 오늘은 환상기법을 잘 쓴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가 그의 작품 속 유령처럼 변신하여 이곳에 왔다고 가정하자. 지금의 한국 현실을 바라보며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죽음의 먼 이국땅을 떠나왔을까. 천상에서 훌쩍 뛰어내린 디킨스가 턱수염을 문지르고는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한국인 여러분! 교과서에 실린 저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기억할 겁니다. 구두쇠 스크루지가 유령친구 덕에 자선하는 착한 사람이 된 이야기 말입니다. 오늘 그런 자선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 온 것은 아닙니다. 지금 한국의 사정이 저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비극과 다름없는 듯해서 잠시 하나님께 외출을 허락받았지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두 개로 나누어져 있더군요. 프랑스나 영국에서 귀족이 하층민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길 때 한국은 사대부와 양반이 그러했지요. 나는 '두 도시 이야기'를 써서 세상을 개선하고 싶었는데 천국에서 내려다보니 도무지 세상이 변하질 않더군요. 내가 쓴 책이 아무 힘이 되지 않았다니 참 허망합니다. 인간은 언제쯤이나 인간다워질 수 있을까요?"  그는 한숨을 쉬고는 길을 떠났다. 새 소설에 나올 주인공이 될 만한 '권력자'와 '부자'를 찾아야 했다. 아무래도 동심이 순수할 것 같아 어느 초등학교의 지붕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학교는 신축 맨션아파트와 낡은 연립주택 사이에 있었다. 운동장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투고 있었는데 옷을 잘 차려입은 여자애가 "넌, 빠져. 넌 공부도 못하고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잖아" 하며 상대 아이를 밀쳐냈다. 눈에 띄지 않는다 뿐 수수하게 차려입은 아이가 풀썩 넘어져 원망스런 눈으로 밀친 아이를 올려봤다. 디킨스는 손가락을 길게 늘여 맨션아파트에 사는 다른 아이의 가슴을 꾹 찔렀다. 그의 손가락에 찔림을 당한 아이가 떠민 아이를 노려봤다. 그 아이는 곧 바닥에 넘어져 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줬다. 디킨스는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때 착한 아이가 분노에 가득 차 외쳤다. "너나 빠져. 같은 반 친군데 아파트로 패를 가르다니 네 엄마가 못 놀게 했지? 너네도 '최순실' 일가야? '정유라'가 사촌이지?"  디킨스는 무릎을 치며 말했다. "옳거니, 초등학교 오 학년도 두 얼굴을 아는군. 드디어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찰스 다네아 같은 인물을 찾았군."  찰스 다네아는 프랑스의 악명 높은 에브레몽드 후작의 조카였다. 후작이 마차를 타고 가다 농부를 치어 죽였는데 후작은 "죽었군", 하고 무심하게 뱉고 그곳을 떠나갔다. 마차 바퀴에 박힌 돌을 내려다보며 '돌이었군', 하듯 감정이 없었다. 농부는 실신하며 가족의 시체를 안고 통곡했지만, 감히 후작의 권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후작의 조카 찰스 다네아는 무수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기 가문의 상속자가 되길 포기하고 영국으로 떠난다. 디킨스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착한 아이가 다네아처럼 여겨져 기뻤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권력자와 그 아래 밟히는 자… 디킨스는 다시 길을 떠나며 생각에 잠겼다. 이 모든 상극의 세계는 사랑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입으로는 사랑, 사랑 떠들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자 누구인가? 그는 안타까움으로 자꾸 한숨이 새어 나왔다. 프랑스에 혁명이 일어나자 다네아는 귀족의 조카라는 죄로 '단두대'로 끌려나가게 되었다. 복수심에 불탄 혁명군은 매일 수십 명에 달하는 귀족의 목을 벴다. 일찍이 루시라는 처녀를 사랑했던 두 남자 다네아와 시드니 카튼, 시드니 카튼은 사랑하는 루시의 불행을 막으려고 그녀의 남편 다네아를 구출하기로 한다. 대신 사형장으로 가면서도 두렵지 않은 것은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기희생적 사랑은 아니라 하더라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아주 조금, 미안함을 느끼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부와 권력을 자만하며 함부로 휘두르지 않을 것이다. 디킨스는 속삭이듯 말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창세기 8장의 한 구절이 귀를 간질였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착한 아이가 친구와 다정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교실 쪽으로 걸어갔다. 디킨스는 품 안에서 하얀 깃털 펜을 꺼내 허공에다 뭔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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