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달리기를 하는데, 모두가 같은 출발선(出發線)에서 동시에 출발하면 도착선 선두(先頭)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선수는 50m 앞에서 출발하고, 어떤 선수는 90m 앞에서 출발한다면, 그 경기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인데, 누가 그런 경기의 결과를 승복(承服)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선수가 뛰는 실력보다 누가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는가를 경쟁하는 이상한 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승복하라는 것이다. 오래 전 '마르크스'는 모두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여 같은 속도로, 같은 시각(時刻)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똑같은 상(償)을 나누어 가지라 하였다. 그러자 선수들은 굳이 숨 가쁘게 뛸 이유가 없었고, 그 결과 대단히 비능률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면서 결국 그가 제창한 '사회주의(社會主義)'는 도태되고 말았다. 반면, '자본주의(資本主義)'는 모두가 있는 힘을 다하여 뛰게 하고, 우열(優劣)에 따른 상(償)의 크기도 다르게 하였다. 따라서 선수들은 부지런히 자기능력을 배양하고, 또 실력을 경쟁해야 하는 능률적인 사회구조를 만들면서 상대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거기엔 반드시 어떤 전재조건이 따르게 되는데, 즉 개인이 가진 능력의 우열에 따른 보상의 크기는 달리하지만, 기회균등(機會均等)의 원칙이 반드시 적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출발선이 동일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경기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또 그 결과에 승복(承服)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금수저, 은수저 얘기야 진부하기도 하지만, 심히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바로잡아야 할 심판마저 전혀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궤변(詭辯)이나 늘어놓으며 경기 룰을 자기 마음대로 적용한다면, 당연히 그런 경기에는 참가할 필요도 없지만 아예 폐지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경기장이나마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으며, 우리는 이제 출발선이 명확히 그어진 새로운 경기장, 합리적인 룰, 공정한 심판을 먼저 세운다음 다시 경기를 시작함이 마땅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이념 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보수주의'니, '진보주의'니 하는 당치도 않는 소리들은 제발 그만두고 모두 출발선으로 되돌아가자. 그리고 누구나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는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보편타당한 경기규칙이 적용되는 새로운 뜀박질을 다시 시작하자.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얘기하던 사람들, 그들만을 위한 '법'이라면 우리가 그런 법을 지켜야할 이유가 없고, 그들만의 원칙이라면 이미 그것은 원칙이 아니다. 원칙은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는 것이어야 하고, 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야 그 효력을 가진다. 가장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도리어 질서를 볼모로 자신들의 반칙을 눈감으라 한다.  감나무 아래 떨어져 있는 감은, 아무도 그 감이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가지에서 나무 아래로 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안다. 따라서 아무리 그럴듯한 궤변(詭辯)과 법리(法理)를 들고 나와도 감이 나무 뿌리에서 솟아나 그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주장은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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