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에서는 보통 9월에서 11월까지를 '가을'이라 한다. 가을을 가리켜서 안개와 무르익는 열매의 계절이요, 과일의 아버지란 말이 있다. 이효석의 '가을풍경'에 보면 "가을은 차고 이지적이면서도 그 속에서는 분화구 같은 정열을 감추고 있어서, 그 열정이 이지를 이기고 폭발하는 수도 있고 이지 속에 여전히 싸늘하게 숨어 있는 수도 있다. 열정과 이지가 무섭게 대립하여 폭발의 일선을 위태롭게 비치고 있는 것이 가을의 감정이요, 성격이라"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성은 '봄'을 좋아하고 남자는 '가을'을 선호한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오색단풍도 마르고, 차갑게 느껴지는 추풍의 기운에 옷깃을 여미면, 어딘가 모르게 애잔함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시상(詩想)을 느끼게 되고 고엽(枯葉)처럼 느껴지는 한두장 남은 캘린더를 바라보며 계절이 던져주고 간 시름과 교훈을 한꺼번에 느껴지는 계절이다. 시인 릴케의 '가을날'에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했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주십시오/ 일 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과일이 익을대로 잘 익어/ 마지막 감미가 향긋한 포도주로 깃들 것입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언제까지나 혼자일 것입니다/ 자다가 일어나 책을 읽으며/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 불안스럽게 가로수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을 조용히 걸을 겁니다/ 마음이 슬퍼옵니다" 가을이면 누구나 허전함을 느끼며, 무언가 잃어버린 듯 아쉬움이 잔뜩 남는 허황한 계절의 느낌을 갖는다. 그러면서도 가을의 들녘은 풍요롭고 넉넉하다. 그리고 휘영청 달이 밝으면 먼 곳으로 간 자식들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풍족함과 외로움이 함께 존재하며 푸근한 마음을 위로할 일들이 자주 생겨나는 계절이다. '가을밤'을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심정은 자랑스럽기만 하다. 우물가에 오동잎 바람에 나부끼고/ 옆집 다듬이 소리 가을이 분명하구나./ 처마 끝 대청마루에 홀로 누워 어렴풋이 조을 때/ 머리맡에 달빛이 소리 없이 흘러든다. 깊어가는 가을 풍경 속에 자신의 마음도 그 속에 잠겨 가을빛처럼 노랗게 감상에 젖어든다. 어떤 문인은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 했고, 여름은 샹데리아, 가을은 호롱불이라 하기도 한다. 두보(杜甫)의 시 '밤'의 잔흥이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만든다. 이슬 오는 가을밤 홀로 거닐면, 시름에 쌓이는 나그네 마음 멀리 초가집에서 등불이 새어 나오고, 초생달 두들기는 풍경소리가 가슴을 찡하게 느끼게 한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맑으며 대기는 약간 서늘하지만 달은 희고 바람은 청아하여 흥취가 절로 길어진다. 풀벌레 소리가 댓돌사이에서 처량하게 울어대면 나그네의 푸념은 넋을 잃는다. 수필집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라 했다. 다 타 버린 낙엽의 재를 - 죽어버린 꿈의 시체를 -땅 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깊은 밤 귀뚜라미 소리에 놀라 적막 같은 밤이 던져 준 전설을 되새기며 불현 듯 그리워지는 느낌만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가을은 진실에서 찾는 꿈이요, 그 꿈을 거두는 아름답고 찬란한 수확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