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문화 후기(B.C. 3500~3000)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유적에서도 주목받는 것이 제1지점부터 제16지점까지이다. 그 가운데 제1지점은 단독의 여신 신전인 '여신묘(女神廟)'다. 이번에는 이 여신묘를 조금 상세히 소개할까 한다. 첫째, 여신묘는 우하량유적이 내려다 보이는 산의 8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규모는 남북 18.4~22m미터, 동서 2~9m에 이르며, 남쪽의 단독 건물은 6m×2.65m 크기 이다. 둘째, 여신묘에는 흙으로 만든 여신들을 모셨다. 여러 신체 부위별 잔편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여신묘의 한 가운데 주실(主室)에는 실제 사람의 3배에 달하는 흙으로 만든 여신상이 있었다. 서측실(西側室)에는 사람 실물의 2배 크기의 여신이 있었다. 여러 잔편들을 통해서 볼 때 사람 실물의 1배~3배의 다양한 크기의 여신 총 6~7명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셋째, 사람 실물의 1~3배의 여신이 있었다는 것은 여러 잔편들을 통해서 입증된 것인데, (1) 실제 사람의 1~3배 크기에 달하는 유방 잔편, (2) 1~3배 크기의 다양한 귀 모양의 잔편, (3) 1~2배 크기의 손 잔편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넷째, 주실에 있던 여신의 좌우에는 흙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곰(熊)과 새(鳥)의 상이 있었다. 곰은 채색한 아래턱 부분과 발, 새는 날개부분과 발톱 부분만이 잔편으로 발견되었다. 남쪽의 단독실 근처 제사 구덩이에서는 희생으로 바친 곰의 아래턱뼈가 발견되었다. 우하량 일대 적석총에서는 많은 '곰 형상의 옥기'인 옥웅룡(玉熊龍)이 발견되었다. 이런 여러 정황을 통해서 볼 때 홍산문화의 주 토템은 '곰토템'이라고 보고 있다. 홍산인은 곰을 주된 토템으로 하는 곰토템족인 것이다. 필자는 홍산인들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족'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섯째, 발견된 여신의 얼굴 모습은 사람 실물 크기의 것 하나뿐이며, 눈동자는 청옥(靑玉)을 반원형으로 갈아서 넣었다. 반원형의 뒤쪽에는 단추처럼 돌출부가 있어서 끼워넣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여신상의 얼굴은 전형적인 '몽고인종'의 얼굴로 판단하고 있다. 여섯째, 이웃한 홍산문화 동산취(東山嘴)유적에서는 얼굴 부위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반가부좌를 하고 있는 손과 발의 모습의 파편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서 우하량 여신묘의 여신들도 반가부좌를 틀고 않은 자세였을 것을 보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선도(仙道)의 기원이 홍산문화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일곱째, 여신묘의 흙벽에서는 '동북아 최초의 벽화' 잔편이 발견되었다. 벽화는 번개문(雷紋)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번개문은 만주일대 신석기시대 토기에서도 많이 보인다. 홍산문화 우하량유적 제1지점 여신묘는 5,500년 전에 홍산인들이 단독의 여신 신전을 건축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템숭배 단계를 넘어서서 조상숭배의 단계에 이른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하량유적에서 보이는 거대한 적석총, 천단(天壇), 지단(地壇) 등을 함께 고려할 때, 아직은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홍산문화 후기에는 이미 '초기 국가단계', '초기 문명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 중국학계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