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라는 말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됩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봅시다" 이 말은 일명 '행복전도사'라 불리던 최윤희씨가 늘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2010년 가을, 그녀는 뜻밖의 뉴스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남편과 함께 자살로 생(生)을 마감했다는 그녀의 소식은 그녀와 함께 웃고 행복해 하던 사람들을 허탈감에 빠뜨렸다. 하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라는 병을 앓았으며 그 통증이 매우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아픈 현실과 '행복전도사'라는 직업사이의 괴리감에 한동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행복은 무엇인가. 그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 질문은 유효하며 여전히 그 정답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로딩중이다. 머리가 아프면 사람들은 두통약을 먹는다. 콧물과 재채기, 몸살이 있으면 감기약을 먹는다. 또 기분이 우울해지면 항우울제를 먹는다. 이렇듯 우리는 늘 아픔과 함께 살고 있다. 통증은 살아남은 자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통증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죽은 생명체와 같을 지도 모르겠다. 한의원을 찾았던 한 법조인 부부는 불임(不姙)으로 자살까지 생각하는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몸은 아프지 않지만 다른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치료 덕분인지 행운 덕분인지, 아니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두 명의 아들의 낳았고 또 셋째를 임신해서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육아 걱정에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아이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이가 생기니 또 다른 걱정거리가 행복을 막아서고 있다. 우리 역시 그러하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돈만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지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또 건강만 하면 된다고 하고 그러다 지진이 오면 지진만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아프고 늙으면서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경험을 한다. 한의학에서 탈영실정(脫營失精)이라고 하는 정신적 충격으로 생기는 병증이 있다. 귀(貴)한 신분에서 천(賤)한 신분으로 내려가면 '탈영'이라고 하고, 부유하였다가 가난해지면 '실정'이라고 한다. 이 병의 형태는 몸이 여위고 초췌해지며 입맛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며, 또한 추위를 몹시 타며 잘 놀라고 건망증이 생기며 팔다리가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 이렇듯 인간의 몸은 불행해지면 병이 생긴다.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는 약은 없는 것일까. 아이 같은 질문을 해본다. 한의학에서는 의사(醫師)를 상의(上醫), 중의(中醫), 하의(下醫)로 나누어서 말하곤 한다. 하의(下醫)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의사를 말한다. 말 그대로 당장 아픈 곳을 침이나 약으로 고치는 것이다. 중의(中醫)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를 말한다. 질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 또는 마음 씀씀이까지 고치는 것이다. 상의(上醫)는 세상을 고치는 의사를 말한다. 솔직히 요즘은 하의(下醫)가 되는 것도 어려운 게 현실이긴 하지만 의사들은 중의(中醫)가 되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렇듯 불행해지면 몸에 병이 생기듯 행복해지면 몸이 좋아질 것이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한다. 한국 의사들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의(下醫)도 되지 못하고 그저 하류(下流)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상의(上醫)가 나온다고 해도 행복해 질 수 있는 약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약은 없기 때문이다. 생은 고통과 함께 이어지기 일쑤이고, '살자'와 '자살'이 하나이듯 모든 것이 완벽하게 행복하고 기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행복은 일회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금할 필요도 아낄 필요도 없다. 또한 테크닉도 지름길도 없다. 누군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약이 있을까 묻는다면 나는 "행복해지는 일은 없다. 행복은 그때마다 '느끼는' 수밖에 없다"라는 사사키 후미오의 말을 대신 처방하고 싶다. 행복은 오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