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악삐악 노란 머리가 연약한 껍질을 깨고 나와요. / 세상을 처음 보고는 즐거워 병아리가 삐악거려요. / 머리를 쳐들고 병아리가 내게 물어요, '니가 내 엄마니?'" 이는 미국 전역의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시카고의 한인 단체인 '세종문화회'가 매년 실시하는 시조(時調) 창작 콘테스트의 수상작 가운데 한 편으로, 중학교 1학년생의 아이가 영어로 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의미를 살려 옮기다 보니 다소 길어지긴 했지만, 원문의 음절을 세어 보면 각 행은 14~15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작문 시간에 시조의 기본 형식을 배우고 이 같은 작품을 썼던 것이리라. '영어'로 '시조'를 썼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처럼 우리말이 아닌 언어로 시조가 창작되기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면, '시조의 세계화'라는 화두가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조의 세계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다시 말해, 갈 길이 멀다. 어찌 보면, 시조의 세계화라는 장정(長征)을 위해 이제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단계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조에 대한 간단하고 명료한 정의다. 그러한 정의가 없이는 외국인에게 시조를 소개하는 일 자체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시조는 3행으로 이루어진 짤막한 정형시(定型詩)임을 앞세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정형시에는 일본의 하이쿠도 있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는 양자의 차이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하이쿠는 두 이미지의 중첩 또는 병치의 구조로 이루어진 정형시라면, 시조는 이미지의 제시와 발전과 반전과 종결이라는 복잡한 시상 전개를 노린 정형시다. 즉,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의미 구조를 갖는 것이 시조다. 문제는 이처럼 복잡한 의미 구조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하이쿠가 현실이나 자연 현상에 대한 순간의 찰나적 깨달음을 담기 위한 시 양식이라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한편, 시조는 인간의 삶에 대한 시간적 이해를 담기 위한 시 양식으로,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또는 원인과 진행과 결과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관찰과 이해다. 달리 말해, 대상에 대한 '초시간적(超時間的)'인 깨달음을 드러내는 하이쿠와 달리, 시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얻은 인과적 또는 '시간적'인 깨달음을 드러내는 것이 시조다. 이 같은 개념 정의 이외에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사실 시조가 외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1950~60년대로, 그동안 적지 않은 번역의 성과물이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종합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아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도록 기존 번역에 대한 목록 작성 및 데이터베이스화가 시조의 세계화를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번역 작업이 더욱 활성화될 때 시조의 세계화는 그만큼 빨라질 수 있으리라. 또 하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조가 세계 어떤 나라의 언어로 창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시 양식임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앞서 언급한 시카고 한인회의 시조 보급 운동은 하나의 소중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준비 작업을 하는 과정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질 수도 있다. 무엇 때문에 시조의 세계화가 필요한가. 단순히 세계화가 시대의 조류이기 때문일까. 이처럼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세계화라면, 시조를 그냥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 남아 있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처럼 껄끄러운 문제 제기에 대해 어떤 답이 가능할까. 영어권 시조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세인트 자크(Elizabeth St Jacques)의 다음 발언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이 물음에 대한 고무적인 답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각이 영어를 통해 시조를 어떻게 변모시키건, 우리 북미 사람들이 항상 시조의 발생지와 기본 개념을 존중하고, 나아가 시조를 국제적 의사소통과 친선의 도구로 여기게 되기를 바란다. 시 세계에 중요한 역사적 공헌자인 시조는 북미 문학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시 세계에 중요한 역사적 공헌자"인 시조는 인간의 정서와 감정을 전하는 데 소중한 '국제적 의사소통과 친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시조의 세계화는 우리 문화의 자존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보다 나은 이해와 사랑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