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시절 꽤나 악명 높던 '왕사수'를 근1년여 동안 찾고 있으나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나이에 그토록 기압주고 혼내던 군대 고참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예전에 군에서 "'빳다'(몽둥이) 치던 고참이 제대할 때는 눈물이 난다"고 했다. 맘씨 좋기만 한 고참이 제대할 때 눈물 흘리는 졸병은 보지 못했다. 일반사회에서도 "호통 치던 상사(上司)가 그리운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조직에서 개인이나 팀이 일을 하다가 난관에 처할 때가 더러 있다. 문제 해결이 어렵고 답답한 상황에서는 예전에 호통 치며 방향(guideline)을 제시해주던 상사가 그리워진다는 것이다. 조직 리더의 유형에는 '지장'(智將)형도 있고 '덕장'(德將)·'인장'(仁將)형도 있으며 '우군'(愚君)형도 있다. 실무자 중 소위 '싸움닭'이 자라서 주로 되는 '용장'(勇將)·'맹장'(猛將)형도 있다. 공조직에는 정권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운장'(運將)형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 중 세월이 지나서도 결코 그립지 아니한 유형은 아마도 우군형이나 운장형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부하들에게 남겨준 유산이 없기 때문이리라. 호통 치던 상사가 그리운 것은 필시 그 호통에는 애정이 실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랫사람이 잘못했을 때 고언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꾸짖을 때는 꾸짖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조직의 상사들 특히 상·하로부터 신망을 받는 간부들이 주의해야 할 함정이 있다. 이른바 '존경 면허'(respect license)의 함정이다. 존경면허라는 것은 존경받는 상사(上司)들이 본인은 보스로서 존경 받기 때문에 부하들을 좀 심하게 대하거나 큰 소리 칠만한 '자격면허'가 있다고 착각(?)하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한다. 이 존경면허가 발동되어 일순 불같이 화로 번지면 그동안 쌓여왔던 덕행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영국의 행정문화에 관한 연구논문 등에서 '한국 행정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눈치'(nunchi)라는 게 있다고 소개한 것을 본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출세를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눈치'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부하가 상급자의 눈치를 보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요즘에는 상급자가 부하 직원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근무성적이나 인사 평정 또는 성과 평가에 '다면평가'(多面評價 : 360-degree feedback) 방식이 도입되면서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부터 스승이 제자들의 눈치를 본다. 바야흐로 부하나 제자의 눈치도 잘 봐야 살아남는 세상이 된 것이다. 눈치는 상대의 의중과 상황을 빠르게 읽고 그에 대처하는 능력이다. 윗사람이 잘못할 때 충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워 왔다. 그러나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 짓을 하겠는가? 아래 눈치도 봐야 하는데 하물며 위에 대해서야… 눈치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고, 학교 교육에 충실한 학생이 출세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의리의 돌쇠'도 다 어데 갔나! 조직 구성원을 성장시키는 것은 '칭찬'이고 그들을 단련시키는 것은 '충고'이다. '칭찬'은 처음에 감미롭고 뒷맛도 개운한 고급 '향차'(香茶)이고 '충고'는 처음에 쓰지만 갈수록 뒷맛이 달게 느껴지는 '보약'이다. 다만, 칭찬이든 충고든 그 명분이 확실해야 한다. 또한 충고를 할 때는 그 태도와 방법이 중요하다. 감정이 섞여서는 절대 안 된다. 감정이 섞이면 인간적인 모욕을 느낄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선의의 지적이라도 그 보약같은 효과 대신에 능멸적인 감정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호통은 충고보다 훨씬 센 보약이다. 그러므로 상급자나 리더들은 '존경면허'의 덫에 걸리는 것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압 주던 고참, 호통 치던 상사가 그리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인간의 마조히즘적(masochistic)·의존적 본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갈수록 우리사회가 조직 내·외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두루 눈치를 봐야하고 예의라는 이름으로 아세(阿世)하는 세상이 되어가기 때문에 역겨워서, 그래서 그들이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