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조의 한 부분에 "추월(秋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잠 못 이루나 하더라"라는 구절이 있다. 가을 달은 푸른 창공에 떠있어 유별나게 밝고 커 보인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음력 보름을 기점으로 해서 '신라의 달빛'을 체험하는 행사가 열린다. 모파상의 '월광(月光)'에 보면, 어째서 신(神)이 달빛을 만들었을까? 밤은 잠으로 쉬기 위해서, 의식을 잊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것의 망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그 '밤'을 '낮'보다도 매력 있게 하였으며, 여명(黎明)보다도 저녁노을보다도, 한층 그리운 것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따사로운 가을이라는 계절이 던져준 낭만으로 밀물같이 스미는 외로운 사람으로 불을 끈 창변에 차가운 달빛처럼 어디엔가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마냥 고민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어느 소설의 한 대목에서 가을의 잔해가 남아있다. "휘영청 보름달이 그대의 등을 고요히 비춰주고, 물결은 발밑에서 한가롭게 철썩거렸다. 그리고 먼 섬 둑 아래에서 물새의 지저귐이 구성지게 들린다" '태양'을 '남성'이라면, '달'은 '여성'에 속한다. 달은 하늘의 사자(使者)다. 차가운 음기가 쌓여 물이 되고, 물기의 결정체가 달이 되는가 보다. 불교에서도 달은 사람의 '본성(本性)'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구름을 벗어난 달은 그렇게 환하고 밝다. 더구나 채워지고, 이지러지는 보름께의 달을 바라는 멋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보다도 대화가 더 다사롭다.  중국 한시에도, "하늘에는 구름이 뜨고/ 수풀엔 별이로다./ 야삼경 북녘달을 누워서 바라보니/ 임 계신 천리 먼 곳이 눈에 암암하더라" 달빛 기행에 나선 일행들은 논밭길로 한 줄로 늘어서서 한 손에 초롱 들고 달맞이 나선다.  옛 선조님들의 발자취 따라 걷는 마음은 자세부터 숙연해진다. 유적지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세월이 거슬러 감을 느낄 수 있다. 이름 모를 풀벌레소리가 발걸음에 맞춰 경쾌하게 들리고, 교교히 비추는 달의 모양에서 달무리가 선다. 갑자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일의 날씨는 쾌청함을 감지하곤, 다시 달의 위용에 옷깃을 여민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느닷없이 김소월의 시 한 구절을 낭송한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그렇게 사무치게 그리움인줄은/ 예전엔 정말 몰랐어요"  달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고 악을 쓰며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도 저무는 달기운에 목이 쉰 듯 조용하여 적막이 흐른다. 별빛도 덩달아 숨을 죽인다. 어쩐지 인간은 작열하는 태양을 보면 시상을 느끼지 못하는데, 달빛의 온유함에 큰 매력을 느낀다.  달빛이 바람위에 끊임없이 짙은 향기같이 엄습하며 간밤에 처마 끝에서 울고 간 흔적이 주위를 적막케 한다. 꽃빛깔 같은 달밤은 고향을 떠난 나그네의 심장 한 가운데 서서 저녁노을보다도 한층 그리운 것으로 보름달이 박덩이 같이 하얗게 뜨는 밤-풀벌레 소리마저 애처롭고 처량하게 들리는 이 밤. 달은 항상 가슴에 있다.  일 년 중 초가을의 달은 유난히도 밝다. 이슬에 촉촉이 젖은 들길로 함초롭게 쏟아진 별빛과 함께 유적지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듯 정감스런 이 밤, 달빛은 나의 것이다. 타향에서 객창을 두들기는 비 소리만 들려도 가을의 감회가 울컥거리는 낭만의 밤은 언제나 나그네의 주제가요, 서러움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