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배우 윤여정의 필모그래피를 탄탄하게 만든 '죽여주는 여자'이다. 이 영화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노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노인들에게 일명 죽여주는 여자이다. 그러면서도 이 비참한 현실을 끝내게 만들어주는 여자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슬픈 중의적 표현이 한국 사회의 노인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이렇듯 노인을 오랜 경험이 축적된 지혜로운 어른으로 여겼는데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노인은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우리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럼으로써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률,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동의보감에는 양노(養老-노인 봉양) 편에서 늙는 것은 혈(血)이 쇠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늙으면 정혈이 모두 소모되어 평소에 칠규(七竅) 즉, 사람의 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구멍. 귀·눈·코 각 두 개의 구멍과 입의 하나의 구멍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이때부터 오장의 기운이 쇠해지기 시작하여 눈이 어두워지고, 혈기가 흐트러지고, 피부가 마르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했다. 한의학은 인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여 오장육부에 있는 장기와 기타 부속기관들의 유기적인 결합체로 생각하며, 사람은 각각의 장기가 따로 분리되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기능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을 유지한다고 본다. 사회 역시 그러하다. 사회는 노인·청년·어린이등 모든 계층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다보면 계층 갈등이다, 세대 갈등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모두 공감하기 때문이리라. 한국 노인들은 많은 역사적 변곡점들을 겪었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했으며, 한국전쟁의 생이별을 겪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강의 기적으로 일컫는 엄청난 경제적 변화도 경험했다. 이런 세월 속에서 그들은 굳어버린 머리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외로운 시간 속에서 약해빠진 몸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도 예전에는 젊은이였고, 그도 파란만장한 꿈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의학서에서 말하는 처방보다 노인에 대한 해결책은 외로움의 해결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관은 결국 먼지가 쌓이고 문을 닫게 된다. 오갈 데 없는 그들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도서관에 자주 찾아가서 그것이 지식이든, 지혜이든, 세월이든 무엇이든 열람하고 대출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먼지 쌓인 책 속에서 시끄러운 지금의 답을 찾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지금 한국의 상황을 '헬조선'이라고 한다. 그래서 '탈한국'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늙은 고목은 산을 지키고 있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려울 때 그들은 싸우면서 지켰고, 행복할 때 웃으며 산을 지켰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