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어떤 일을 해결하거나 해나간다면 자율(自律)이라고 할 만 하지만 그렇지 않고 남이 시켜서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타율(他律)이라고 할 것이다. 자율이 좋고 타율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자율과 타율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나가면서 자신의 생활을 최상으로 꾸려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자율과 타율의 적절한 뒤섞임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되어 적이 놀라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만하다. 자율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져야만 글을 쓸 수 있고 글이 쓰지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자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면으로는 타율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자율적으로 글을 써나가는 사람은 있기는 할 테지만 극히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글이라는 대상은 어떤 상황이 만들어놓은 국면들이 만나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더 자율과 타율의 조화를 고민하게 하는 대상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글 '청탁'을 받았다. 처음에 청탁을 받았을 때는 좀 의아하고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글을 써보지도 않았고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기에 청탁은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탁을 받고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서서히 그러나 강력하게 일었다. 고민을 하다가 어찌 되었던 맡겨지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도 들고 이 기회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글을 쓰는 것을 억지로 해본다는 것도 그렇게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타율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나에게는 많았던 것 같다. 사회에서 마련해 준 틀이 있기에 그 틀에 맞추어 그 과정을 거쳐 와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다. 남들과 비슷한 모습을 갖고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온전히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가를 묻는다면 쉽게 그런 것이 있다고 할 수 없을 듯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그러니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마련해 놓은 타율의 틀에서 삶을 살아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나만의 자율을 만들고 그것이 타율만은 아니라고 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여 생각과 삶을 바꾸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글쓰기가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 본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율만으로는 살 수 없고 타율만으로도 살아갈 수도 없다. 타율과 자율이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되어 나와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 상황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지금도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익숙함에 묻혀서 그런 것을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기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없다고 할 수는 없고 있다고 해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 그렇기에 남의 삶도 그렇다고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몰라 여전히 이 문제가 명확히 해결된 것은 아니고 여전히 나에게는 반성거리로 남아 있다. 글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마련된 듯하다. 작은 상황이 나에게 자율과 타율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제공했으니 이래저래 이런 일이 무의미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글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피는 기회가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글이 나에게 자율과 타율의 관계를 살피는 더없는 기회를 제공했으니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