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가리켜서 기다림 속에 흩어지는 계절이라 한다. 사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만물(萬物)은 자연에서 출발한다. 자연은 지리적인 것과 지질적 환경과 조건을 말하며 하나의 서명으로 존재한다. 물질적 상태에 있는 인간은 자연의 힘을 감수하고 있으며 인간은 아름다운 상태에 있어서는 자연의 힘에서 빠져 나가지만, 도덕적 상태에서는 자연의 힘을 지배한다. 자연은 모두 신(神)의 영원한 장식이며 신이 쓴 책이고, 신이 세계를 지배하는 기술(技術)이요, 예술(藝術)이다. 시인 롱펠로는 "자연은 신의 묵시이며, 예술은 인간의 묵시"라 했다. 자연은 절대로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다. 사람 자신이 언제나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인간이 잘 순응하는지에 따라 행복과 괴로움을 동시에 겪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은 규칙에 맞추어 생산해 갈 수 있는 기술자 같은 묘법(妙法)이 있다. 사람이 새로운 것을 만든다고 하여 자연을 배반할 수는 없다. 자연의 이치를 순종할 때에 발명도 창조도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대자연은 생명의 '샘'이다. 진흙에서 화사한 연꽃이 핀다. 이 점에서 자연은 창조자요, 시인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엷은 것이 아니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자주(自主) 자족(自足)속에 있다. 부유한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부유함을 사용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자만이 또한 행복을 얻는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하다는 뜻과 같은 것이다. 잘 지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이루게 하는 것처럼 잘 보낸 인생은 행복한 죽음도 가져 온다는 것이다. '행복(幸福)'이란, 교묘히 속여지는 상태의 끊임없는 소유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때로는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희망(慾望)을 줄이거나, 소유물(所有物)을 늘이거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이미 지나가 버린 그림자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리석은 자만이 행복을 현재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어의 행복이란 단어 'happiness'에서 나온 말이다. '행복'이란 글자가 가진 뜻과 같이, 그것은 그 사람의 올바른 성과인 것이며, 우연히 외부에서 찾아온 운명의 힘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남의 행복을 바라볼 수 있는 데서 생기는 즐거운 느낌인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스티븐슨은 "참다운 행복, 그것은 우리들이 어떻게 끝을 맺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희망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재산을 만드는 일없이 재산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행복을 만들어내지 않으면서 행복을 낭비해서도 안 된다. 어떤 심리학자는 남자의 행복은 '내가 하고 싶다'이고, 여자의 행복은 '그가 하고 싶어 한다'이다. 행복은 인간 누구나가 타고난 권리(權利)이며 그것을 빼앗긴다는 것은 인간을 괴팍스럽게 만든다. 행복이 유일한 선(善)이요, 이성이 유일한 '횃불'이고, 정의(正義)가 유일한 숭배이며, 박애(博愛)가 유일한 종교(宗敎)이고, 자연이 유일한 성직자(聖職者)다. 한 철학자가 외치는 구호는 "자연(自然)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그대는 자연이 될 것이다. 의미 있는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