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사태는 아직 그 결말을 알 수 없지만 한국정치사의 대변혁을 예고하는 전조임에는 분명하다. 6월항쟁 후 국민적 합의에 의해 탄생된 87년 체제의 헌정사는 박근혜 정부까지 여섯번의 정권교체를 가져오는 동안 몇차례 국정의 혼란을 초래하는 치명적 약점들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사이 이른바 진보좌파로 분류되는 정치세력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사태와 비리수사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의 친노세력이 스스로를 '폐족'으로 선언하는 몰락을 겪었으나 이제 그 주류는 더민주당으로 국회 제1당이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이은 박근혜 정권으로 이른바 보수우파세력은 두차례나 집권하게 되었지만 대통령 마저 최순실과 함께 국정농단의 공동피의자로 기록되면서 헌정위기와 함께 보수세력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는 보수세력 가운데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 친위세력인 친박만 폐족이 될 것인지 아니면 보수정치세력이 통채로 희망없는 나락의 골짜기로 떨어지고 말 것인지 현재로선 앞이 보이지 않는다. 최순실 농단사태는 사회 전체에 온갖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나 '수습의 주도권'은 당연히 정권대체세력인 국회내 원내교섭단체를 이룬 더민주당과 국민의 당 등 야당이 거머쥘 것으로 예상했다. 이 사건의 특검법을 만들면서 여당에서도 특별검사임명권을 야당에서 추천하도록 합의해 준것이 그같은 수습주도권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야당은 수습과정의 합리성과 법적 정당성 보다 차기정권획득의 이해득실과 수습과정의 책임문제,촛불민심의 향배에 지나치게 민감한 나머지 수습책제시의 혼미와 실기로 주도권에 힘이 빠지고 있다. 이같은 야권의 애매한 행보에 박 대통령은 당초 두차례나 사과할 때와는 달리 국정복귀와 탄핵사태의 '정권방어'까지 감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될 촛불집회에서 '국민분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으나 국정공백을 걱정하는 일부 극우보수층에는 이같은 대통령의 태도변화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촛불민심이 이전 보다 더 격렬해지고 헌정중단사태 위기까지 몰고 온다면 이른바 대통령의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설사 버티기가 가능해도 정부의 공무원 조직이 레임덕에 놓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얼마나 호응할지와 외교안보와 관련한 주요국가간의 교섭에서도 힘이 실리지 않은 대통령의 교섭력이 소기의 효과를 거둘지도 의문이다. 결국 대통령의 버티기는 국민적 피해를 키울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헌정중단사태의 위기든, 대통령 버티기의 성공이든, 박 정권을 창출한 보수세력에게는 국민지탄의 꼭지점에 설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부터 시작되는 대통령선거에서 보수정치세력에 대한 선택지는 무시될 수 밖에 없고 그 동안 보수정치세력을 지지해 왔던 유권자들은 정치적 아노미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이정현대표를 비롯한 친박지도부는 박근혜 정부의 몰락과 함께 침몰을 각오하는 '순장조'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건강한 보수정치세력의 재창출은 싹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세력이 재창당을 목표로 탈당을 결행하고 이른바 대권주자군을 중심으로 한 비박세력들이 비공식 모임을 가지고는 있으나 별 뾰죽한 대안을 못내고 있다. 오히려 친박,비박의 집안 싸움만하는 볼썽사나운 모양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탄핵정국에서 비박세력의 역할이 주목받는 시기에 건강한 보수정치세력의 재편은 우리나라 정계개편의 핵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건강한 보수정치 재건의 열망은 헛된 기대가 되고 말 것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