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의식불명'이라 구급차로 가는 중이라 했다. 마음과 달리 행동이 굼뜨게 움직였다. 바지를 꿰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정신은 돌아온 것 같은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바깥날씨는 가을답지 않게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구십을 넘긴 아버지는 폐렴이 재발해 같이 입원하셨다. 1609호실 엄마는 밤에 위급상황이 올지 몰라 보호자가 필요했고, 1611호실 아버지는 까다로운 환자라며 보호자를 호출했다. 직장 다니는 동생들이 당번날짜를 먼저 정하고 내겐 수요일이 배당되었다. 다행인 것은 엄마가 응급실에서 병실로 옮긴 후 조금 나아진 것이었다.  나는 눈썹만 간신히 그리고 병원에 갔다. 가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치매라면 어쩌지, 아버지는 누가 모시나. 직장 다니는 며느리는 안 될게 뻔하고, 시모 모시고 사는 여동생도 안 될 테고' 병원에 들어서면서 공연히 내 몸도 허해졌다. 마치 환자라도 된 것처럼. 아버지가 호흡기를 단 모습은 자주 보았지만 '힘드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뒷바라지만하다가 야윈 엄마를 보자 울컥해졌다. 나를 알아보는 엄마가 너무 감사했다.  엄마는 '금식' 중이었다. 이틀 동안 이런저런 검사를 하기위해 그랬다는데 MRA검사가 남아 굶고 기다려야 했다. 뭔가 드시고 싶어 했지만 물 한 방울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둠이 내렸다. 커다란 유리창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은 밝았다. 그 아래 나뭇가지들은 바람을 감당할 수 없는지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가로등도 흔들렸다. 창문도 바람소리를 냈다. 엄마가 잠이든 것 같아 나도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다리를 펴니 그간 긴장했던 마음도 조금 펴지는 듯 했다. 누워 올려다본 천정이 아주 먼 하늘처럼 점점 높아졌다. 머리맡에 놓인 냉장고는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그것도 숨을 쉬는 중이구나 생각하니 그렇게 시끄럽진 않았다. 창 쪽으로 붙인 침대에선 찬바람이 느껴졌다. 스르르 눈은 감겼지만 귀는 열어두었다. 1609호실. 아픈 세 사람은 제각각 참아내고 있었다. 육체의 아픔과 어두운 시간을 상대로. 말 없는 공간에서 멀쩡한 나는 울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죽음을 염려한 눈물인지, 살아있음이 고마운 눈물인지 흐르고 또 흘러내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 가만히 내버려두면 흐느낌이 커질까봐 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엄마는 눈을 감으면 MRA검사 때 들렸던 기계소리가 난다며 힘들어 하셨다. 두 시간 마다 혈당체크를 하기 위해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 사이 새벽 네 시가 되었다. 엄마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며 몸을 옆으로 하셨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밑에 슬리퍼를 신기 위해 다리를 내리셨다. 나는 지푸라기 같은 엄마가 부서질까봐 손에 힘을 적당히 분배해야 했다.  아침 여섯시가 넘어서자 복도 쪽에서도 부산해졌다. 간호사들의 교대가 있는지 숫자도 많아진 것 같았다. 일곱 시 반쯤 되니 회진을 도는 의사선생님도 계셨다.  아침 식사가 나왔다. 아버지가 계신 병실로 가서 밥과 찬기뚜껑을 열고 수저를 꺼내 드렸다. 호흡기를 달고 계시긴 하지만 어제보다 좋아보였다. 엄마의 아침은 흰죽이었다. 힘겹게 입으로 가져가는 손길이 담담해 보였다. 엄마는 내 속내를 읽기나 하신 것처럼 말씀하셨다. "니 아부지는 내가 돌보마" 엄마는 그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흰죽을 넘기시는 것 같았다. 엄마가 위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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