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살대회'는 직장 상사를 작살내는 행사였다. 한 때 일반기업에서 주로 신입 사원들끼리만 하던 '회식'을 말한다. 여기에 상급자는 참석하지 않는다. 여느 회식자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말들이 오가지만 회사나 상사(上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상사들을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온갖 입방아를 찧고 갈고 평가하고 별명까지도 붙여가며 작살을 내는 것이다. 회식비용은 회사가 부담해 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무슨 말들이 있었는지 회사 측이나 상사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도 그 시절 작살대회에 몇 번 참여한 기억이 있다. 이 작살대회에서 그들은 상사들을 신나게 까부수기도 하고 존경도 하면서 직장 적응의 스트레스를 풀고 또한 조직과 사회를 배워 나간다. 악의 없는 욕설의 장은 이처럼 하나의 교육과정으로서의 순기능도 했던 것이다. 필자가 정부 모 부처에 근무할 때 불같은 성품의 간부가 있었다. 그에 시달리던 한 직원이 하던 넋두리가 생각난다. "저 양반 꿈에도 나타난다. 왜 이렇게 날 괴롭히는지… 전생에 내가 지한테 뭘 잘 못했나…" 직장인의 스트레스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직장 스트레스의 주된 원천 중 하나는 상사이고, 그 스트레스 해소에 특효약은 상사와 한 판 붙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상사와 실제로 싸울 수가 없으니 말로써 분풀이 할 수밖에 없고 이것도 면전에서 어려우니 없는 데서 마음껏 욕하는 것이라 했다. 실로 작살내고 싶은 상사는 있어도 작살내고 싶은 부하는 없는 것 같다. 없는 데서 윗사람을 칭찬도 하지만 비판하는 것도 조직인의 인지상정에 따른 일상이기도 하다. 상사가 부하를 평가하지만 이제는 부하들도 상사를 평가할 권리가 있다. 오늘날 이를 용인하지 못하는 상사는 직장을 떠나야 한다. 조직 구성원들이 상사에 대해 하는 말들 중 리더십 개선에 참고가 되는 것도 있지만 모르고 넘어가는 편이 개인이나 조직에 이로운 것이 많다. 본래 별 내용도 아니며 그냥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지나가듯 언급되는 것들임에도 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면 문제 아닌 문제로 둔갑하게 되고 화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부하들의 입방아에 전혀 오르지 않는 상사는 필시 '무생물' 같은 관리자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직 내 온갖 말들이나 부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 상사가 있다. 예전에 군 지휘관 중 공식 상황보고 외에 영내(營內)의 비공식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병사들 중 심복을 두고 '프락치'(fraction)처럼 활용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일반 직장이나 조직에서도 이렇게 하는 상사가 있다 하나 그 자체가 워낙 은밀한 것이어서 실제 사례로 발견되기 어려운 점은 있다. 또한 본인들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자신도 모르게 프락치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된 부하 직원은 다른 직원들의 언행을 수시로 보고하고, 상사 또한 그에 귀 기울여지며 시원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소리는 처음에만 시원하다가 곧바로 아토피처럼 증폭된 가려움으로 다가오며 경우에 따라 분노를 동반하기도 한다. 그것이 직원 인사관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위험 수위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조직에 비공식 보고원이나 프락치를 키우면 안 되는 것이다. 조직 내에 '비선'을 깔아 두면 내부 불신을 야기할 수 있고, 모르고 넘어가야 할 일을 알게 되면 개인과 조직의 번민을 일으켜 결국에는 직장을 불구로 만들 수가 있다. 모르는 게 약인 것이다. 조직 내의 동향이 궁금하면 공식 보고체계를 다변화하고 부하 직원들의 목소리를 알고 싶으면 내부망을 활용하면 된다. 온라인의 익명성 보장이 우려되면 활용 가능한 오프라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건전한 비판과 악의 없는 욕설은 조직을 활성화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를 것은 모르고 넘어가야 한다. 본질적인 흐름과 관계없는 입방아들은 그냥 스쳐가도록 놔둬야 한다. 찧고 까부는 것이 조직 저변에 공감과 생기를 불어 넣기도 하는 것이다. 상사들은 기꺼이 부하들의 작살 대상이 될 줄도 아는 내공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