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너무 어지럽고 안타깝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사실을 신중하게 들여다보고 알리려하기보다는 다분히 선동적이라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선동 세력에게는 물론, 언론의 부추김에 따라가는 듯한 세태도 흙탕물만 도도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실종되고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만 여겨지는 세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도 지우기 어렵다. 아무리 봐도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나라'를 지키거나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 이면까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나 표면상으로는 분명 그런 것만 같다. 정치인들은 자신을 비롯한 패거리의 유불리만 따지고 좇아가는가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든 소명과 사명감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는 행보만 거듭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더 심하게 말하면 '나라'가 어디로 가든 당리당략과 정권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만은 아닐 것 같다. 지난날 대학 강단에서 꾀 오래 '현대문학사'를 강의한 적이 있다. 우리의 말과 글, 얼까지 찾은 광복 직후의 소위 '해방 공간'의 한국문단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당시 정치·사회적인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우리의 문학을 새롭게 일으켜 세우려는 문제를 두고 좌우의 대립과 갈등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치열했다. 당시 한국문단은 그런 정치·사회적 갈등과 대립 양상을 첨예하고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새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해방 공간'에는 좌익의 목소리가 높을 뿐 우익의 목소리는 극히 미미했다. 논객들도 거의 좌파 일색이었다. 우익의 논객으로는 소설가 김동리가 선봉이었고, 시인 조지훈이 가세했으나 그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목소리에 밀리기만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남북분단이라는 미증유의 민족적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한국문학은 해금조치가 이뤄지기까지 반쪽 문학이 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유의해서 새겨야 할 점은 미미했던 목소리와 큰 목소리의 역전이었다. 그 결과 우리의 말과 글, 얼을 바로세우는 길을 걸으면서 오늘의 문학적 풍요를 일굴 수도 있었다. 요즘 세상은 '해방 공간'을 방불케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좌우의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다분히 선동적이고 목소리가 큰 쪽으로 민심이 쏠리게 마련이기 때문에 우려의 소리들이 나오는 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겉으로만 표출되는 오늘의 민심이 과연 진정한 민심일까 하는 문제를 두고 냉철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우려도 그런 전철 때문임을 말할 나위가 없다. 잘못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쪽은 겸허하게 그 비판을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나라'가 바로 갈 수 있도록 소명과 사명감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당리당략과 개인 이기주의가 오직 '잿밥'에의 눈독일 뿐 '제사' 자체가 왜곡되거나 변질된 소지가 없지 않은지 철두철미하게 따져봐야만 한다. '절도 모르고 시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제 진정으로 차근차근 정신을 차려할 쪽은 국민이다. 국민이 무게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정치논리나 특정 세력의 득세와 목적을 향한 공략에 휘둘리는 건 아닌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결국 가장 불행해지는 쪽은 국민이다. '나라'라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냉철하게 들여다보지도 않고, 어떤 세력이 선동하고 부추기는 방향으로만 몰려간다면 예상치도 못한 비극의 수렁으로 빠져들지 모르며,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논리도 '마녀 사냥'식으로나 '하이에나'식으로 '몰아붙이기'여서는 안 된다. 철새처럼 개인의 영달에 눈이 어두워 겉으로만 드러나는 여론의 눈치나 보고, 힘이 있어 보이는 쪽에 편승하면서 오락가락하는 정치인들도 비판받아야 한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은 적이 되는 '권력에의 이전투구'는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나라'의 운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의 평상심 회복도 간절하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