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회의원과 통화를 했다. 오는 9일로 예정된 대통령 탄핵 표결에 참가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말해달라고 물었다. 그는 진박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스스로 친박이라고 떠들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친박들이 모이는 자리에 핵심에는 끼지 못하지만 그래도 변두리 자리지만 한 자리를 꿰어 차고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지역구를 방문하면 선배 의원들을 제치고 가장 측근에서 보좌하며 카메라에 집중적으로 얼굴을 내보이기를 좋아했던 정치인이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그 의원은 당황했다. "거기에 대해서 지금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9일로 예정된 탄핵 표결 이전에 여야간에 대통령 퇴진 일정을 두고 협상이 이뤄질 수도 있고 이번 주말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민심으로 정치권이 크게 요동칠 수 있으니 그 상황을 지켜보고 난 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눈치보기, 소신 없는 정치인의 태도였다. 스스로 친박이라고 말하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고 난 후 친박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박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국정이 혼란스러워지고 난 뒤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이 증발해 버린 의원이다. '위기의 순간에 결정을 유보하는 사람은 지옥에나 떨어져라'고 목소리 높인 서양 철학자의 말도 있다. 그 의원은 지금 자신의 거취를 두고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을지 눈에 훤하게 보인다. 한 치 앞도 짐작할 수 없는 정국 상황에 국민들의 목소리는 분명하지만 정치란 국민들의 말만 믿고 가서는 위험하다는 그동안의 관행을 경험해 봤던 터라 결정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대통령이 '결정장애'를 겪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9일 탄핵 표결이 이뤄지면 그 결과에 따라 정국과 국민들의 민심은 또 한 번 소용돌이치게 된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뒷배를 봐주는 계파의 눈치를 봐서 승승장구하던 시대는 끝나간다. 그 국회의원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이상문(칼럼니스트)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