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지러운 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국무성 대변인이 한국의 복잡한 정치상황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전혀 변함이 없음을 천명했다. 아울러 대한민국 국민들의 '촛불집회'를 지지한다고도 말하였다. 그런데 지금 정계 일각에서는 백만이 넘는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체 국민들의 뜻은 아닐 것이라 하며 또 해묵은 종북론(從北論)을 들고 나와, 국민들을 불순 종북세력 등에 휩쓸려 다니기나 하는 우민(愚民) 취급을 하는 발언이 나와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것 같다. 촛불을 든 국민들을 '종북' 내지 '종북세력'에 조종당하는 사람들이라 규정한다면, 그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미국 역시 종북성향(從北性向)이 아닌가? 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과반수(過半數)가 훨씬 넘는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고 있으니 그들 또한 종북세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正體性)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는 정말 무조건 통치자를 추종하는 사람들만이 '충신'이요 '애국자'라는 얘기인가? '짐이 곧 법이요', 짐이 곧 국가이니, 나랏님을 함부로 내려오라 하는 촛불 든 국민들은 모두 불충(不忠)이며 대역죄인(大逆罪人)이 되어야 한다. 고로 대한민국은 이제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왕권국가'로 바꾸는 헌법이 먼저 개정(改正)되는 것이 순서에 맞지 않을까? 그래서 갑자기 개헌(改憲)을 주장하고 있는가? 헌법이야 원래 시대정신과 국민의 뜻에 따라 얼마든지 개정될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과거에 헌법이 어떤 시기에 어떤 과정으로 개정되어 왔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위정자(爲政者)의 권력 연장을 위하여 대통령의 재선중임제(再選重任制)를 3선 중임제로 바꾸었다. 그리고 연장된 임기가 끝나가자 나중엔 아예 종신집권(終身執權)을 위한 '유신헌법(維新憲法)'을 만들기도 하였다. 사실 헌법 개정은 국민의 뜻에 따라 되었다기 보다는 위정자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 온 것이라 보는 편이 옳지 않겠는가? 그들은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권력을 연장시킬 수 있을까? 그 해답이 바로 권력 분산형 이원집정제(二元執政制) 개헌이 될 수 있다. 즉, 정권연장이 어려울 바에야 그냥 통채로 권력을 넘겨주는 것 보다는 권력을 자기들도 좀 나누어 가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일 수 있겠다. 제왕적 권력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그런데 문제는 그 제왕적 권력을 신봉하고, 그 권력을 지금까지 마음껏 향유(享有)하던 그들이 과연 권력 이양기(移讓機)에 와서야 그런 제안을 할 염치가 있는가 이다. 제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그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국민은 아마 드물 것 같다. 따라서 모든 국민들이 좀 더 바람직한 개헌을 원한다 해도,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며, 오늘의 사태를 야기시킨 사람들 모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은 후에야 범 국민적 합의로 개헌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도둑'을 잡았는데, 그 도둑이 형법(刑法)을 바꾸자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 그리고 누구든 죄가 있으면 죄 값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죄인의 명예는 무엇이며, 나라의 질서를 가장 어지럽힌 자들이 질서를 말하는 것도 국민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제 더 이상 추락될 국격(國格)이 남아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그나마 대한민국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키는 길은 나라를 분탕질한 사람들에 대한 국민들의 추상같고 준엄한 심판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