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가 '이슬람 출신 미국 이민을 잠정 중단 시키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 이유는 모든 '무슬림'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 중에 테러를 자행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속해 있다는 사실과, 지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해도 실상은 '잠재적 공모자들'이 일반 무슬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문명충돌 전쟁을 예고한 대통령인수위 책임자는 말한다. 힌두교와 유대교, 불교와 시크교, 유교와 힌두교는 공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슬람은 기독교와 유대교, 심지어 같은 이슬람 사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어서, 세계평화 질서를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화약고'라는 것이다. 그래서 막강한 미국의 힘으로 '악성 암'인 무슬림을 단호히 도려내 버리겠다고 기염을 토한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어느 특정 나라의 무력이나 위협에 의해 쉽게 제압될 만큼의 힘없는 소수 종교가 아니다. 힘이 없기는커녕, 훨씬 앞서 나갔던 기독교까지도 따돌릴 만큼의 무서운 저력을 발휘, 오늘에 있어서 16억 명이라는 가공한 신도를 거느린 거대 종교로 성장했다. 숫자상 통계로는 아직도 우위에 있다고 자만할지 몰라도 1등 주자였던 기독교를 반발 차이로 바짝 좁히고 있거나, 이미 앞질러 달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왜 일까. 왜 무슬림의 숫자가 인류 역사상 어떤 종교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맹렬한 속도로 증가일로에 있는 것일까. 왜 하나님이 택한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적하는 무슬림은 자꾸 늘어 가는데, 특히 기독교인은 점점 줄어드는가. 그것도 아브라함 슬하의 이복형제인 이스마엘의 후예가 이슬람이 되고, 그 동생 이삭의 후손이 유대교가 된 마당에, 지금도 똑같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하늘처럼 섬기는 집안 혈육들끼리 왜 소통과 화합이 아닌 저주와 보복을 일삼는 것일까. 나는 그 점이 늘 궁금했다. 그 호기심이 발동하여 무슬림의 나라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사하라를 수차례 여행을 시도한 끝에 장편소설 '오옴하르 음악회'를 썼고, 그것을 책으로 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코란이 아니면 칼'로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벌였다는 이슬람 땅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9월 라마단 기간 중 어느 날 무슬림의 큰 도시들을 한 날 한 시에 피바다로 변하게 하는 상황이 그것이었다. 소를 잡았기 때문이다. 한 마리 두 마리가 아니라 수만 마리, 전국 규모로 수백만 마리를 한꺼번에 도살, 그 피가 넘치다 못해 상류로 범람하게 된 것이다. 짐승을 사람 대신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 죄 사함을 얻는다는 구약 레위기의 제사언약이었다. 그러니까 무슬림들은 레위기의 하나님과의 약속을 2천년 가까이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정부나 종교 지도자들의 강압적인 명령에 의한 피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행동, 이른바 실천하는 신앙심이다. 어쩌면 건강상태가 좋은 최고 품질의 소를 사기 위해 무슬림들은 그처럼 열심히 1년 동안 일했는지도 모른다. 어디 희생제물 뿐인가. 하루 네 번 메카를 향해 절하는 기도도 그러하고, 라마단 기간 동안의 금식이 그러하고, 평생 꼭 한 번은 실천해야 하는 메카 방문이 그러하다. 식사 전 기도 외에는 어떤 규제나 제약도 없이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는 대다수 기독교인에 비해 무슬림의 그것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가혹한 족쇄를 스스로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유일신 알라를 그처럼 극진히 섬기는 것일까. 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인간폭탄을 자원, 하루에도 수십 명씩 산화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잇는 것일까. 과연 그 무서운 신앙심을, 그 철저한 이슬람 율법을 똘똘 뭉친 조직력을,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으로 암세포인 듯 단칼에 도려 낼 수 있을까. 나는 장편소설 '오옴하르 음악회'를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이 만국의 언어인 음악을 매개로 하여 소통하고 화합하는 작은 집단을 상징적으로 그려보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상 상황일 따름이다. 하나 이번 트럼프의 반 이슬람 편견을 보고, 그 가상 상황을 현실로 바꾸는 것이 보다 옳은 해결 방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실해지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문명충돌 전쟁을 예견한 관련학자들의 말처럼 이번 트럼프 당선자의 발표로 하여 알카에다와 IS의 홍보담당자들로서는 '일하기가 쉬워지는'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