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 그 역시도 즉위하여 남산성을 중수하고 성안에 커다란 창고를 설치하였으며 3년에 걸쳐 부산성을 쌓고, 안북하천 변에 철성을 쌓았다. 또 서울(경주)에 성곽을 쌓기 위해 책임관리를 명령하였다. 이때 의상법사는 통일 이후에도 이렇게 힘든 상황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 왕에게 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으면 비록 풀 언덕에 선을 그어 성(城)으로 삼더라도 백성들이 감히 타고 넘지 않을 것이며, 재앙을 물리치고 복이 들어오도록 할 것이요 만약 정치와 교화가 밝지 못하면 비록 만리장성이 있더라도 재해를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니 이에 왕이 공사를 곧 중지하였다. 삼국사기에 문무왕은 김유신의 임종을 앞에 두고 병문안 가서 말하기를 "나에게 그대가 있음은 고기에게 물이 있음과 같은 것이다. 만일 피치 못하고 그대가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생긴다면 백성들은 어떻게 하며, 사직을 어떻게 하여야 좋을까?" 하고 물었다. 이에 김유신이 답하기를 "신이 보면 대통(大統)을 잇는 임금이 처음에는 정치를 잘 하지 않는 이가 없지 않지만 끝까지 잘 마치는 이는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대의 공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없어지니 매우 통탄할 일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성공이 쉽지 않음을 아시고, 수성(守成)의 어려움을 생각하시어, 소인을 멀리하고 군자를 가까이 하시어, 위에서는 조정이 화목하고 아래에서는 백성과 만물이 편안하여 화란이 일어나지 않고 국가의 기반이 무궁하게 된다면 신은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 하자, 왕이 울면서 받아들였다. 문무왕 자신 또한 죽음을 앞두고 유언하기를 "옛날 모든 일을 다스리고 살폈던 영주도 마침내 한 봉우리의 무덤을 이루고 만다. 시간이 지나면 풀 뜯는 아이들과 목동들은 그 무덤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는 그 무덤 옆을 뚫으니 무덤이라는 것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꾸지람과 비판만이 역사책에 기록될 뿐이며, 헛되이 인력만 낭비하고, 영혼을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애통하고 슬픔이 끝이 없겠지만 이러한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임종 후 10일에는 궁궐의 문 밖에서 서국(西國·인도)식으로 화장하여 장사 지낼 것이며, 상례도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그리고 변경을 지키는 일과 세금 징수는 긴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폐지하고 법령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고치도록 하라" 유언하였다. 어느 시대의 지도자이건 과도한 의욕에 따른 정책으로 국민의 세금이 늘어나는 사업이나 힘없는 반대론자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정책을 강행한다면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똑 같은 불만이 가득할 것이다. 모든 지도자들은 역사에 훌륭한 영웅으로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명감을 갖고 정책을 펼치지만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일을 갖고 성공한 예는 드물었다. 더불어 권위와 명예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권위와 명예는 권력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의상법사의 충언처럼 국민을 위하는 애민(愛民)의 마음이나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임을 탄핵정국의 여야 정치인들과 우리 모두는 '나는 정말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잘하고 있는가?' 라고 한번쯤 되돌아 볼 때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