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무지(無知)와 어리석음이 무슨 죄(罪)인가?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불경(佛經)에 이르기를 지극한 어리석음(痴)이 곧 '죄악'이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무지와 어리석음 그 자체가 죄일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 어리석음이 과(過)를 범하게 하고 곧 죄를 짓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일개 범인(凡人)도 이와 같을 진데 하물며 한 나라의 국정(國政)을 책임져야하는 위치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박학다식(博學多識)에 명철(明哲)한 두뇌, 합리적 사고(思考)능력, 올바른 윤리관 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국가를 불행하게 만든 죄는 결코 면피(免避)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며 대통령뿐만 아니라 친박(親朴)이 함께 문제가 되고 있다. 일국의 책임자가 박씨(朴氏) 성(姓)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친박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정권 초기부터 진박(眞朴), 친박(親朴), 탈박(脫朴), 돌박(回朴), 멀박(遠朴), 비박(非朴) 등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 관계를 규정하고 분류하는 용어들이 회자(膾炙)되었다. 최근에는 골박(骨朴)과 증박(憎朴)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추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지금의 이 난국(亂國)은 이미 정권 초기부터 예고된 불행이었을 뿐,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발생된 스캔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요즘 국내 정치상황을 보면서 이씨(李氏) 조선왕조(朝鮮王朝)를 떠올리게 된다. 거대한 대륙국가 중국과 호시탐탐 대륙 진출을 노리는 섬나라 일본 사이에 끼어있던 유약(柔弱)한 나라 조선(朝鮮)은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이라는 군사 쿠테타에 의해 왕조가 바뀌었다. 초기에는 새로운 왕조에 대한 정통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었다. 그 후 이씨조선 오백년 내내 당쟁(黨爭)으로 바람잘 날이 없더니 끝내 섬나라 일본에게 주권(主權)을 빼앗기는 치욕(恥辱)을 당하게 되지 않았는가? 요즘으로 말하면 처음엔 소위 주류(主流)와 비주류(非主流)가 대립하더니 나중엔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나누어지고, 다시 동인(東人)과 서인(西人)그리고 노론(老論) 소론(少論) 등으로 갈라져 서로 번갈아 칼자루를 옮겨 잡아가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피 비릿내 나는 당파싸움에만 골몰했다. 이러자 탐관오리(貪官汚吏)가 판을 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 질대로 피폐하여 끝내 망국(亡國)의 길을 가고 말았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열강(列强)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반도(半島)국가 대한민국, 외세(外勢)의 침략으로 국권(國權)을 빼앗긴 지 36년 만에 또 외세의 힘을 빌어 겨우 국권을 회복하였다.하지만 이 좁은 나라에서 남(南)과 북(北)이 다시 갈라져 총뿌리를 서로 겨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당(與黨)과 야당(野黨)은 무엇이며, 보수(保守)와 진보(進步)는 무엇이며, 우파(右派)와 좌파(左派)는 무엇이며, 호남과 영남은 무엇인가? 그리고 동일한 여당 내에서도 골박(骨朴), 진박(眞朴), 친박(親朴), 비박(非朴)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기에 덩달아 야당 내에서도 친노(親盧), 비노(非盧), 그리고 또 주류(主流)와 비주류(非主流)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니, 가히 시대를 거슬러 구한말(舊韓末)의 위기 상황이 이 시대에 다시 재현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아주 몸서리가 쳐진다. 온 나라가 이렇게 콩가루 집안처럼 된 데는 오로지 자신의 영달(榮達)만을 위해 어리석은 통치자를 옹립(擁立)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의 책임이 더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런 사람들을 정가(政家)로 보낸 국민들의 어리석음 또한 죄(罪)라 아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제 누가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조기대선(早期大選)도 중요하고 개헌(改憲)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처방(處方)들로 이 악순환(惡循環)을 과연 끊을 수 있을 지가 의문스럽기만 하다. 근본적으로 우리 모든 국민들이 치(痴)를 벗어나야 치(治)가 바로 서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