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겨울이 왔다. 나뭇잎이 떨어진 가로수들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도열했다. 이번 겨울 경주는 더욱 추울 수 있다. 연 이은 자연재해로 관광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헐겁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 자연의 순환논리지만 이 논리는 인생사에도 적용된다. 가장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나면 새로운 힘이 솟고 의지도 맹렬해진다. 경주시민들은 한없이 순박하고 착하다. 신라의 후예답게 자부심도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온갖 불이익을 감수했다. 신라 고도라는 이유로 개발은 제한되고 밥벌이를 위한 기업체도 마땅치 않았다. 오죽하면 경주에서는 공무원과 교사들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나왔을까. 수년 전부터 기업체들이 속속 입주했지만 원청업체의 노사분규가 있으면 꼼짝없이 흔들렸고 경기가 불황으로 접어들면서 규모를 축소하거나 문을 닫고 있다. 한수원 본사가 들어섰지만 연관 기업이 얼마나 유치될 수 있을지 아직 장담할 수 없고 그 기업들이 경주의 경제에 얼마나 기여할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특히 지역 인재의 취업도 보장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수원과 관련된 직원들의 경제활동은 경주보다 인근 포항과 울산에서 이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주에서는 소비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유다. 포항과 울산에서 쇼핑을 하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본 뒤 경주의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잔다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강제할 수도 없고 모자라는 인프라를 급하게 구축하기도 힘들다. 결국은 그들이 경주시민으로서의 주인의식을 갖게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결국 경주는 경주다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노력을 가다듬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도시로 완전히 정착시켜야 한다. 경주시가 집중하고 있는 왕경복원사업과 더불어 다양한 관광콘텐츠를 갖추는 길만이 경주가 살고 시민이 살아가는 길이다. 다른 시도는 솔직히 백약이 무효다. 경주의 도시 이미지는 산업도시도 상업도시도 아니다. 문화예술역사도시다. 그 개성을 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상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