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저녁 우리는 처음 지진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지진은 일본 등 외국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로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우리 땅에서 발생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연일 '한반도도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보도하고 지진전문가들도 '한반도에도 규모 7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일본 등 강진지역의 과거 지진피해 사례들이 연일 보도되면서 곧 큰 지진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대학에서도 경주에서 취업캠프 개최 계획이 알려지자 학부모로부터 '지진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가요?'하는 문의가 이어졌다. 지진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많은 주민들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이러한 피해사실이 너무 과장되게 외부에 알려지면서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급감하고 지역경제가 급격히 침체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지금도 규모 2~3정도의 여진이 발생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지진피해를 일으킬만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는 않다. 지진의 악몽을 극복하고 지역경제를 되살릴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필자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의 내진성능에 관한 논문을 통해 현행 내진설계기준에 따라 설계되고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시공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은 이번 경주지진 정도의 중규모의 지진에 대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즉, 한반도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교량이 붕괴되어 인명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내진설계의 기본원리는 지진에 얼마간의 피해는 발생하더라도 인명손실은 방지하도록 하며 과도한 경제적 부담이 없도록 설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조물에 손상이 발생하더라도 급격한 파괴 즉, '취성파괴'를 방지하고 파괴가 지연되는 '연성파괴'가 되도록 설계기준에서는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내진설계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라도 현행 설계기준에서는 인명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연성설계가 되도록 규정되어 있어 어느 정도의 내진성능은 보유하고 있다. 지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지진에 대한 대책수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한반도의 지진특성과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야만 한다. 지진피해 가능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내진설계를 강제하게 되면 사회적 저항을 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지진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점진적이고 꾸준히 추진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내진설계 및 시공을 관리할 수 있는 지진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내진설계를 핑계로 과도하게 '건축비'를 요구하는 일부 건축업자를 견제하여 건축주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민간 건축물에도 내진감리제도를 도입 지원하고 상시 지진대책 수립 및 지진대비 훈련을 담당하도록 한다. 둘째, 지진에 대비한 건축 관련 조례를 제정한다. 경주지진에서와 같이 큰 피해가 예상되는 건축물에 부착된 낙하물(기와, 전등, 간판 등)에 관한 기준을 정비하는 것이다. 셋째, 모든 구조물은 철근 등 연성재료로 보강하여 내진성능을 확보하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개인주택의 담장에 대한 규정이 없어 작은 지진에도 무너지는 피해가 속출하였다. 이처럼 지진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기적으로 지진발생 시 행동요령을 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이상은 급격한 예산투입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다. 원전시설이나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내진대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설에 강진지역에서나 필요한 지진대책을 여과 없이 도입하면 불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지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지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세재혜택 등 민간의 자발적인 내진설계 도입을 유도하고 예산투입을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인 내진대책수립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