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산에 가면 '도토리'라는 작지만 소중한 것을 발견하곤 한다. 요즘은 산에서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지만 얼마 전만 해도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산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가을은 온 천지에서 결실을 맺고 그것들을 자연으로 돌려주는 운동이 일어나는 보기 드문 계절이다. 가을이라 인간도 자연의 혜택을 받으면서 그 결과로 생의 한 자락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다. 도토리를 보면 추억에 젖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도 만들고 하는 즐거운 요즘이지만 도토리에 숨겨진 비밀이 있어 깜짝 놀라게도 된다. 도토리는 작지만 결국 작지 않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물건이니 가볍게 보지 말고 무겁게 보아야 한다. 어릴 적 도토리는 산에서 주워 와 '묵'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는 양식이자 추억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시골 고향의 나지막한 산에는 도토리나무가 지천으로 있어 그것에서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지금은 돌아가시고 내 곁에 없는 어머니가 집안의 사람들을 위해 고향 산자락의 이곳저곳을 헤매어 찾아내어서 그것을 정성스럽게 묵으로 빚어 우리들에게 주었으니 더욱 추억거리로 소중하다 할만하다. 도토리묵의 맛은 처음에는 떱떱하지만 먹을수록 고소하여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이런 추억의 한 자락은 나만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만한 흔한 추억거리 중의 하나다. 나만의 도토리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도토리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기 때문에 나에게 소중하다. 이와 같이 도토리가 가벼운 것으로 나에게 다가왔다가 얼마 전에는 더욱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것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도토리와 관련한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산에 있는 도토리라고 하찮고 가벼운 것이 결코 아님을 깨우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것은 한 언론 보도에서 한 것인데 나의 무감각한 도토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보도는 도토리를 인간이 주워가는 바람에 산에 사는 여러 동물들이 겨울나기를 힘들어 한다는 것이었다. 도토리는 그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 작지만 소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니 토끼, 까치, 다람쥐, 멧돼지 등에게 겨우내 추위를 견디고 배고픔을 이기게 해주는 양식이었던 것이다. 그 언론 보도에는 멧돼지가 도시로 내려와 소동을 벌이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인간이 가져간 도토리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작은 결과물에도 인간의 욕심이 작용하여 그것을 독점하고 전유하여 일어난 일이 멧돼지 도시 출현이라는 점은 나를 적잖게 놀라게 했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도토리로라도 먹어서 허기를 달랬기에 그것을 굳이 잘못된 일이라고 나무랄 수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는 먹을 것이 너무 지나치게 많이 있어 그런 것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배고픔을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족한 상태다. 도토리를 주어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먹을 것이 많고 지천으로 널려 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자연이 남긴 결실을 탐하지 말자. 떨어져 있는 도토리에까지 욕심을 부려 산에서 주워오지 말자. 산에 가서 도토리가 있거든 산에 사는 짐승들이 먹어야 할 것이라고 여기고 욕심은 부리지 말라. 이제 산에서 도토리를 줍는 사람이 있거든 주워가지 말아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해 보라. 집의 할머니나 어머니가 도토리를 주워오거든 주워 와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라. 세상은 인간만의 독점적 욕심으로 어디선가 어그러지고 잘못되어가는 일이 있음을 자각하라. 그리고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작은 일도 여러 것들을 고려하여 바라보아 자기를 내려놓고 남을 중심으로 올려놓고 바라보라. 가을이 다 지나가고 겨울의 초입에서 난 데 없이 도토리 이야기를 꺼내어서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