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떠난다는 소리로 가득한 가을강 가을 강에 서면 삶도 잠시 스쳐가는 바람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은 기껍고 서러운 일 떨쳐버리고 강바람 타고 날아가는 갈대꽃처럼 허허로운 바람 되어 마냥 흐르고 싶다.  이희목 시인의 시 '바람 되어'를 읽으면 바람 부는 강변이 눈앞에 펼쳐지고 '삶도 잠시 스쳐가는 바람이란 생각'에 가슴 한쪽이 휑해진다. '허허로운 바람'처럼 욕심 없이 살아야 할 인생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1938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이희목 시인은 1982년 '시문학'지에 '늦가을 동구밖'과 '보리밭'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경주문협 회장을 지내고, 경주시문화상도 수상하며 향토의 문단을 정성껏 기경했다. 평생을 월성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교사이기도 한 시인은 '접시꽃 마을', '호박잎 빗소리', '가을 민들레', '그리운 산하', '창포꽃' '마름꽃' 등의 시집을 냈다.  시집의 제목에서 보듯 시인은 평생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정서로 꽃과 고향을 노래했다. 이제 곧 팔순을 맞는 시인의 삶 또한 길가에 핀 들꽃들처럼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기품이 있어서 좋다.  2009년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올 무렵이었다. 고희(古稀)를 지난 시인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아내 류화우 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시인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아내의 병간호를 받으며 힘겹게 투병해 오고 있었다. 그런 시인을 위해 가족들이 마련한 출판기념회 자리였다. 휠체어에서 힘들게 일어난 시인은 온 몸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에게. 우리들의 삶이란 장마철에 번개 치듯 빠른 세월이었지만 우리 서로가 만난 지도 벌써 4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내가 경제적인 일에는 문외한이라 오직 문학세계에만 침잠하여 주야로 시 쓰기에 골몰하는 동안 당신은 홀로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또한 몸이 불편한 나의 손발이 되어 우리 생의 가장 어려운 고비를 함께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승에서의 임무를 다하고 영원의 세계로 돌아가는 날, 한 쌍의 창람 빛 물총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힘껏 날아가 봤으면…. 너무나 수고한 당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평생 한눈팔지 않고 뚜벅뚜벅 한 길로 걸어 온 어느 샌님 같은 남자의 애틋한 사랑가였다. 함께 자리 한 이들의 눈가에도 물기가 맺혔다.  시인은 경주 양동마을 회재 이언적 선생의 후손이었고, 아내는 안동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 선생의 후손이었다. 두 가문의 만남이라는 큰 배경이 부부의 삶에도 이런저런 모습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시인은 병석에서조차 늘 옷매무새를 만졌다.  돌아보니 지난 세월을 지탱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였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 무엇이라도 쌓고 남기고자 할 때 그 일을 홀로 외롭게 하지 않도록 하늘이 우리네 인생을 위해 동반자를 허락하지 않았을까 싶다. 2004년 12월 경주문협상 수상자를 고르던 자리에서 건강하던 시인은 갑자기 쓰러졌다. 그날 쓰러진 시인을 업고 응급실로 달려간 덕분에 나는 '생명의 은인'이라는 과분한 감사를 받았으나, 시인은 그날 이후 그때까지 살아온 삶과 다른, 낯설고 힘겨운 삶의 여행을 떠나야 했다.  시인은 눈에 잘 띄는 벽에 '좌절하지 않기'라고 큼직하게 써 붙여 두었다. 하지만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여행에서 좌절하지 않아야 할 사람은 시인 자신만이 아니었다. 가족들, 그중에서도 누구보다 아내의 걸음은 더욱 꿋꿋해야만 했다. 10년이 훌쩍 지나고, 그 세월 속에서 시인은 어쩌면 자신이 노래해 온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한 편의 인동초(忍冬草)를 짓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번에는 홀로 외롭게, 강변의 바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