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 리더십에 대해서는 '찬탄(讚嘆)'이라기보다 '비판'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른다. 생명 가치는 절대적이다. 헌법학 시간에 학생이 다수의 생명을 위해 소수의 생명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교수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호된 가르침을 받은 기억이 있다. 생명 가치는 수량적으로 접근할 수 없고 그 자체로서 존엄한 것이다. 징기스칸을 미국의 한 주요 언론이 지난 천 년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 리더십론에서는 그의 리더십을 위대한 리더십의 한 표본 등으로 칭찬들을 하지만 그러한 평가에 포괄적인 동의는 할 수 없다. 복수와 야심에 찬 피의 정복자, 그의 말발굽이 닿는 데마다 극한 공포와 잔인한 방화·살인이 따랐다.  저항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죽이고 인명·재산의 씨를 말려버렸다. 그의 군대가 지나가는 곳에는 사람 뼈가 산을 이루었다 하고 한 번의 전쟁으로 백 만의 시신을 쌓은 적도 있다 하니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海)를 만들며 희대의 잔혹함으로 세상을 짓밟은 것이다. 우리 강토도 유례없는 9차례 약 30년을 유린하지 않았던가? 생각만 해도 그에게서는 살육의 누린내와 피 냄새가 나는 듯하다. 전쟁이라고 해서 생명의 존엄에 대한 예외일 수는 없다. 군사적 통치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를 원리적으로 용인하자는 건 아니며, 다만 사법적 판단을 자제하자는 것이다. 전쟁의 살상행위도 인간존엄의 법칙에 있어서는 면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징기스칸의 리더십을 찬탄하는 것은 전쟁은 전쟁이고 잔인은 잔인이며 리더십 중 배울 것은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그의 리더십에 대해 다양한 접근과 분석 이 가능하겠으나 적어도 군사학 차원에서는 실로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당시 몽골인 병사 10만 명을 포함한 총 200만명(100만명 설도 있음)도 안 되는 인구로 약 1억 인구를 장악했고 점령지도 알렉산드·나폴레옹·히틀러가 점령한 땅을 합한 것보다 훨씬 넓었다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리더십 요소는 무엇일까? 엄한 군율 아래 지휘관의 솔선수범과 병사와의 동고동락, 체계적인 조직관리, 가공할 기동력(機動力)과 정보 전달력, 전과(戰果)의 공정한 분배, 야전 지휘관에 대한 과감한 권한 위임, 적의 저항의지를 미리 꺾는 이른 바 '의도중심 전략' 항상 배우고 발전시키는 전투방식, 점령지 자치권 보장, 신상필벌과 은원(恩怨)관계의 철저 확립 등 수두룩하다.  그런데 징기스칸의 인간적인 면모와 리더십의 근원적인 것 두 가지만 도출해 보자면 '경청(傾聽)'과 '포용(包容)'이 아닐까 싶다. 어린 징기스칸(테무진)에 대해 '아홉 살 소년의 눈에 불꽃이 일고 얼굴에 광채가 나는 듯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는 원래 지혜로도 의형제 자무카보다 부족했고 힘으로도 친동생 카사르에 미치지 못했다. 또 평생 글을 몰라 자신의 이름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겸손'하여 남의 말에 귀 기울였으며 그래서 점차 현명하게 되어가면서 친구와 동지들을 사귀어 갔다. 인물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는지 모르나 가는 곳마다 유능하거나 재능 있는 자는 파격적으로 등용했다. 항복한 자는 넓게 용서하여 자기편으로 만들고 광범한 자율권을 부여했다.  몽골 통일을 위한 초기 전쟁시절에 그가 격파한 부족의 패잔병 중 자신이 탄 말의 목을 활로 정확히 맞힌 적병을 친구로 영입해 제베(Jebe)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제베는 그의 핵심 장수로 활약하다 전사하였다. 그의 인재 등용의 백미는 금나라 정복과정에서 개세(蓋世)의 지략가 야율초재(耶律楚材)를 얻어 명재상으로 만든 일일 것이다.  출신성분·지위 등과 상관없이 능력위주의 '공정한 인재 등용'과 적을 친구로 만드는 '친화력'과 '포용력' 등은 징기스칸 리더십 특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납치되어 적장의 아이를 잉태해 온 아내를 베지 않고 다시 맞이하여 그 아이를 적자로 키운 것은 정략적이라거나 당시의 문화 습속적 행태로만 매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적어도 인간적인 차원에서 무서운 포용력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비록 정략적이거나 순간적이더라도 생명을 위한 '용서'와 '포용'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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