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하순이다. 수능도 끝나고 한해가 또 저물고 있지만 '다이나믹 코리아'는 여전히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늘 그렇듯이 연말이 되면 다가오는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고통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모를 고통에 빠져있는 많은 이들이 우리 주위에 서성거린다. 우리는 스스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현실(現實)'이라는 울타리 속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그러한 작금의 현실세계 중에서도 참담한 현실의 대표격(代表格)을 들라면 아마도 최순실사태일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정녕 우리에게 '현실세계'란 어떤 것이며, 언론이 전하는 보도를 통해 올바른 세상읽기가 가능한 것일까?  현실세계는 복잡다양하다. 기업인에게는 '이윤이 전부'이고, 학자에게는 '진리는 반드시 승리 한다'가, 법률가에게는 '법 앞의 평등'이, 연인들에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야!' 가 현실일 것이다. 이런 모순된 현실세계 속에서 과연 어느 것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물론 모두가 맞는 말이다. 현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이다.  즉 우리 사회는 경제시스템, 학문시스템, 법률시스템, 가족시스템 등과 같이 기능적으로 나누어진 독립시스템의 집단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그 각자가 경제, 학문, 법률, 애정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을 행하고 있다. 학문시스템 속에서는 '진리는 반드시 승리 한다'가 성립되며, '돈이 전부' 따위에 눈을 돌리면 쇠고랑을 차기 일 수이다. 최순실사태의 본질도 바로 이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인들은 서로 모순된 복수(複數)의 현실세계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神)의 권위가 모든 것에 군림하던 예전에는 인간은 신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의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세계는 제멋대로 제약을 강요한다.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현실에 적응하여 살아가야만 하는가 하는 판단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더욱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것은, 전문화에 의한 지식의 증가에 따라 현실은 점점 더 복잡 기괴(奇怪)하게 되고, 그나마도 좀처럼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평소에 우리들은 경제나 법률의 방대한 지식체계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잠재(潛在)하고 있을 뿐으로, 교통사고와 같은 예기치 않은 기회에 얼굴을 들어낸다. 이때 우리들에게 잘 정리된 '세상읽기'를 알려주는 것은 다름 아닌 언론이다. 언론은 수면 밑에 잠재된 다양한 현실을 취재해서 일종의 현재적(顯在的) '세계지도'를 그려준다.  우리들은 TV보도나 신문기사를 통해 '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고 믿게 된다. 거기에는 각 시스템의 활동에 관한 이미지가 솜씨 좋게 편집되어 진열되어 있다. 매스미디어란 단순히 뭔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며, 현대인의 세계관을 지탱하고 있다는 이유로 현대사회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또 다른 함정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매스미디어는 예전과는 달리 통일적 세계관을 우리에게 부여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지역개발계획에 관한 경제뉴스 직후에 같은 지역 내의 생태계 보호를 호소하는 문화뉴스가 흐른다던가, 비참한 교통사고를 전하는 기사 바로 옆에 호화로운 유람선관광을 추천하는 컬럼이 배치되기도 한다. 존재하는 것은 통일적 관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국소적인 흥미를 끌게 하는 편집기술만이 있다. 개개의 언론들이 나름대로 정합(整合)적인 주장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문제시되는 것은 언론이 잘못 보도하고 있다든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있다든가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반복되지만 현대사회에는 원래부터 통합적이며 유일(唯一)한 '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이 가져다주는 세계지도는 필연적으로 단편(patchwork)적일 수밖엔 없다.  더욱이 최근의 단편적 정보의 팽창과 그것을 편집하는 기술의 세련화와 반비례하여 우리는 언론이 만들어내는 현실이미지로부터 진정한 '세상읽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신문이탈현상, TV도 뉴스보다는 스포츠나 버라이어티 등의 대중적 프로그램만을 선호한다고 하는 비판의 소리를 자주 접하는데, 이를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결여라고하면서 걱정하기만 한다. 한탄의 숨을 내쉬기 전에 먼저 각자가 언론을 통해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와 동시에 중요한 것은 우리를 둘러싼 복잡 다양한 현실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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