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古都), 경주에서 또 하나의 고도, '사마르칸트'로 가는 길은 지루함이었다.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기에 나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기차로 7시간을 달려 그곳으로 간 것일까. 차창으로 펼쳐진 끝없는 벌판의 광대함이었던가 싶기도 하다가도 평면의 벌판에 나는 그저 하품을 해댈 뿐이었다. 하지만 사마르칸트에 발을 딛는 순간, 엉켜있는 시간의 실타래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마치 시간의 미아처럼 723년과 2016년을 오가며 2500년 역사를 가진 도시, 사마르칸트 속으로 들어갔다. 2001년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고도(古都)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다. 고대 호레즘시대에는 마라칸다로, 중국에서도 강국(康國)으로 불려진 곳이다. 14세기 티무르는 제국을 건설하고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장악한 대제국을 세우게 된다. 티무르는 도시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유명한 예술가와 건축가를 끌고 와 아름다운 도시로 꾸미도록 명령했다. 푸른색을 좋아했던 티무르는 사마르칸트를 '푸른 도시'로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사마르칸트는 '푸른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렇듯 생소한 언어로 가득한 도시에서, 경주에서 약 7,000Km나 떨어진 도시에서 나는 신기하게도 실타래처럼 엉킨 경주와 사마르칸트를 만날 수 있었다. 제관식 때 초대받은 사신들 중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環頭大刀)' 를 차고 있는 신라인의 모습이 담긴 7세기의 아프라시압 벽화에서 그것은 시작되었다. 당시 당나라와의 역학관계 속에서 돌궐과 신라와의 중요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계림로 14호 묘에서 나타난 황금보검은 5세기경 중앙아시아에서 유행한 단검형태였다고 한다. 이렇듯 공간을 옮겨 놓은 듯 신라와 사마르칸트는 만나고 있었다. 그것은 혜초 스님(이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통해 기록되어져 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는 723년 신라 경주를 출발한 뒤 4년 동안 인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등 서역지방을 여행하며 정치, 경제, 문화, 풍습 등을 생생히 담고 있다. 기행문 가운데 파미르 고원이 있는 사마르칸트 일대부터 신장 위구르까지의 기록되었다. 그 오래전 시간을 더듬어 혜초의 여행 속에 있는 듯 나는 혜초와 같은 바람과 땅과 물을 만났다고 여겼다. 또한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의 기상을 느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것은 그들의 순수한 미소이다. 나를 향해 항상 웃어주고 같이 사진 찍기를 청하며, 기어이 훌륭한 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사실 여행사진 중 인물사진을 가까이 찍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티무르가 남긴 샤흐진다, 비비하눔 모스크보다 사람들에게 받은 인상이 더욱 강렬했다. 무엇이 고도일까? 찬란한 문화유산에 앞서 찾아온 이들이 느낄 수 있는 인간 본연에 대한 향기가 아닐까? 고도 경주와 고도 사마르칸트 사이에서 느끼는 차이점이다. '친절하자'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자기 자신에 의한 존중과 배려일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감동이 이것이면 어떨까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졸렬한 문화재 복원보다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인간은 살면서 집을 짓고 종교시설을 만들고 길을 내면서 문화를 형성한다. 하지만 죽은 조상에 얹혀 살아있는 후손이 그저 얻고자 하면 안 될 것이다. 내가 신라인의 옛 발자취를 찾아 사마르칸트를 답사한 것은 경주와 사마르칸트 이 두 고도의 얽힌 시간의 실타래를 푸는 작업이었으며, 또한 경주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앞으로 경주에 남길 유산도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