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천년동안의 순례를 건너와서 성스러운 원형의 기도를 올린다. 시간은 노을빛으로 흘러가는데 나는 자꾸만 어깨를 움츠리고 옷깃을 여민다. 2017년 경주시 1조 520억의 예산 심의가 끝났다. 경주시 예산 70%가 문화행정위원회 소관이며 나는 위원장이다. 나는 두꺼운 예산서를 보며 관련 자료를 찾아가며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 의회는 사업 편성권이 없는 관계로 편성된 예산서가 의회로 올라 와서야 비로소 사업내용을 알 수 있다. 예산서에 기재된 예산은 예산부서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1차 관문을 통과한 예산이다. 의회의 역할은 사업내용을 보고 돈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심의하여 의결하는 것이다. 꼭 해야 할 사업을 삭감하면 의원의 자질이 입방아에 오른다. 이벤트성 선심성예산을 삭감하면 관련단체회원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는다. 경제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소상공인은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는 넘쳐나고 노인보장은 안되어 65세 이상 노인 취업률이 높아가는 현실에서 정치가 정책이 되어야 어려운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현대인들의 막막한 삶에 희망을 줄 수 있으리라. 시의회 회의 규칙상 상임위에서 의결을 거친 후 예결특위에서 한 번 더 심의하여 최종 의결한다. 의회 의정 24년의 역사상 유례없는 178건의 예산 115억2229만원을 삭감했다. 밥값은 했는가? 문화 행정상임위와 예결위에서 쟁점이 되는 사업은 일일이 표결을 통해 최종결정을 했다. 민감한 항목은 표결이 동점이 나오기도 했다. 시의원들의 공부한 모습들을 시민들이 보고 싶어 할 것 같았고 그 결과를 시민들이 환영할 것으로 생각했다. 집행부가 벌집 쑤신 것처럼 뒤집어 진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해당 시민들의 질타가 귀청을 따갑게 때리는 것은 제도적 부패를 용인하라는 것이다. 사업사안에 따른 전문지식과 시민 및 언론의 비판 여론 수렴 등 의원들이 평소 현장을 발로 뛰며 본 것, 느낀 것, 경험한 것을 소신껏 의정에 반영하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윗사람을 농락하여 자신이 속한 단체 또는 개인이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없는지 우리 모두가 되새겨 볼일이다. 선출직 정치인들이 표밭을 기웃거리지 않도록 소신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와 주도록 시민에게 부탁하고 싶다. 오피니언 뉴스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여! 이제 우리도 성숙한 시민으로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동참하자고 호소하고 싶다. 내가 하면 괜찮고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되는 사랑과 불륜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자랑스러운 예산편성이 될 것 같다. 나는 지금 현 시점에서 제로베이스예산(zero base budget)으로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모든 예산항목에 대해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매년 제로를 출발점으로 과거의 실적이나 효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엄격히 사정해서 예산을 편성하는 방법이다. 예산규모의 무질서한 팽창, 경직화를 방지하기 위해 기존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예산이 편성되어야 낭비요인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본다. 2~30년 된 사회단체 보조금도 있다. 출석회원이 작게는 몇 명에서 몇 십 명인 단체라도 사업은 해오고 있고 서류가 부풀려 있으면 서류로는 선별이 되지 않는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해서 현장감 있는 냉정한 예산편성을 집행부에게 부탁하고 싶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창의적 사업이나 시대적 행사가 반영이 되어야 한다. 투자우선순위에서 소득과 일자리가 선행되어야 하고 소수의 취향을 반영하는 예산은 제외되어야 한다. 시대적 유행을 쫓아가는 선심성예산과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봉사라는 미명 아래 수백억의 예산이 편중되고 이벤트성의 축제성 예산이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해당 당사자들이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호소하고 싶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다 보이지 않는 땅속 수도관은 좁고 낡아 물이 줄줄 새고 있다. 수압이 약해 물이 나오지 않아 모두가 잠든 새벽에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하는 우리의 일하는 아들, 딸들의 고뇌가 보인다. 나는 밥값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