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가장 말이 많고, 말하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그리고 세익스피어도 추가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가장 말이 없는 사람은 지금 한국의 '최씨 여인'이다. 묵언수행! 굳게 다문 입을 억지로 열게 해봐야 듣고자 하는 말을 듣기는 어려울 터이다. 부질없는 노력보다는 묵비권 행사가 자신에게 대단히 불리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해 주면, 말 하지 말라고 해도 오히려 열심히 말하려 들지 않을는지? 그러니까 죄(罪)를 추궁하는 쪽에서, 모든 정황(情況)을 종합하여 범죄 시나리오를 만든 다음, 반대로 피의자(被疑者)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게 하고 자신의 결백(潔白)을 입증(立證)하지 못한다면, 그 정황 자체를 유죄(有罪)의 증거로 취할 수 있는 선례(先例)를 만들 수는 없는가? 경찰이 음주운전자(飮酒運轉者)를 적발할 때, 분명히 운전자에게 술 냄새는 나는 데, 운전자가 음주측정을 거부하거나 도망가면 어떻게 처리하는가? 술 냄새는 정황(情況)이고, 음주 의심을 받는 운전자가 음주측정에 응하여 자신의 위규(違規)사실이 없음을 입증하지 않으면 연행될 수 있다. 그런데 국정농단에 비하면 참으로 사소한 음주운전 경범죄도 그와 같이 하면서, 왜 이 거대하고 조직적인 반국가(反國家), 반사회적(反社會的) 범죄 피의자에 대해서는 인권(人權)과 예우(禮遇)까지 곁들여가며, 모든 입증책임이 소추인(訴追人) 측에만 있는가? 모든 범인은 완전범죄(完全犯罪)를 꿈꾼다. 즉 범인은 항상 증거를 남기려 하지 않지만 법이 증거제일주의(證據第一主義)를 택하는 이유는 다 알고 있듯이 비록 열 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無告)한 죄인도 만들 수 없다는 무죄추정(無罪推定)원칙이라는 법취지(法趣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로또복권에 연속해서 세 번 당첨된 사람이 없듯이, 계속 연속해서 이어지는 우연(偶然)은 있을 수가 없다. 총구를 떠난 총알이 날아가는 것은 직접 목격(目擊)되지 않지만, 총소리가 난 후, 과녁에 박힌 탄흔(彈痕)을 보고 그 총알이 총구에서 발사되었다는 사실을 모두 안다. 여러 사람이 들은 총소리는 정황이지만, 총구에서 연기가 나는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곧 범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겹쳐지는 분명한 정황들이 쌓이면 그것은 증거로 인정되어야 하고,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입증해야 할 사람은 바로 피의자 자신이라는 것이다. 일국의 입법부, 사법부가 모두 매달려 범인과 공범들의 입을 열려하지만, 위력(威力)을 가하여 억지로 얻어 낸 그들의 거짓 된 자백(自白)보다 범인의 침묵이 오히려 진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채울 만큼 말을 많이 하신 부처님께서 '업(業)을 피할 곳은 산도 아니요 물도 아니라' 하였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장편(長篇)의 시(詩)를 남긴 예수님이 가라사대 '뿌린 대로 거두리라'고 하였다. '죄 없는 자가 앞으로 나와 저 여인을 돌로 치라'한 것은, 어떠한 죄도 응징(膺懲)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단지 간통한 자신의 죄가 부끄러워 쓰러져 우는 한 가여운 여인에 대한 연민(憐愍)이었으며, 우리 모두가 같은 죄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죄도 없는 가여운 백성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도 뉘우치지 못하는 사람들 ! 그들은 아마 사람으로 부터도, 신(神)으로 부터도 용서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매(愚昧)함은 관용(寬容)할 수 있지만, 사악함은 용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