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정치인을 보면 안타깝다. 불통(不通)의 끝은 어둠이다. 촛불은 그 어둠을 밝히려는 소통의 소리인지 모른다. 불통이란 타인의 소리를 공감하지 못할 뿐 아니라 타인의 눈물과 아픔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불통은 그러나 홀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의연함도 아니다. 오히려 이기심의 담을 쌓고 타인의 고통을 장작 삼아 '나 홀로' 또는 '우리끼리' 모든 온기를 독차지하여 희희낙락(嬉嬉樂樂)하는 상태이다. 하여 '불통(不通)'은 '불통(不痛)'과 다르지 않다. 그 모든 불통의 유전자가 우리 안에서 소통의 유전자와 투쟁한다. 건강한 시민 또는 아름다운 인간의 조건은 이 투쟁을 통해 소통의 감각을 발현하는 데 있다. 어디에서 이상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는 이 투쟁에서 소통이 패배하고 불통의 이기적 존재만이 늘 두드러진다. 인격을 구성하는 여러 기준들 가운데 소통 또는 공감의 능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른바 한 사람의 성인(成人)이 갖출 스펙에서 소통의 요소는 언어구사능력이 전부인 양 착각한다. 말을 알아듣는 소통능력은 가장 초보적인데도 말이다. 소통의 더 높은 차원은 오히려 공감능력이다. 사람과의 공감을 넘어, 동물과의 공감, 나아가 식물과의 공감, 또 더 나아가 영적인 공감에 이르기까지 그 차원은 확장된다. 이런 공감의 차원이 고상함의 차원이다. 그래서 교육이 고상한 인간을 지향한다면 무엇보다 이 공감의 힘을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바람으로 떠날 때 그대 갈잎에 기대어 흔들리며 날리며 가리라. 어쩔 수 없이 바람은 바람으로 떠나야 하고 갈잎은 갈잎으로 파도쳐야 한다. 후회 없다. 초민(楚民) 박주일 시인(1925~2009)이 쓴 '잡초기'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시인은 바람 갈잎 등과 교감하며 삶과 인생으로 교감의 폭을 펼쳐낸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소통이다. 김춘수 시인이 박주일의 작품 세계를 말할 때 '감각의 결, 그 섬세함의 견고성'이라 표현한 까닭을 알 만하다. 술맛에 민감하고 안주맛에 민감하던 시인은 마치 술과 안주를 다루듯 시를 다루었다고 한다. 모든 감각이 활짝 열려서 만상(萬象)과 소통한 셈이다. 즉 바람의 떨림, 갈잎의 흔들림에 마음이 떨리고 흔들리는 이 공명(共鳴)이야말로 공감의 높은 차원이다. 박주일 시인의 어릴 적 이름이 '한은'이었다. '한없이 은혜로워라'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시인에게 그 이름은 어쩌면 더 깊고, 더 높은 차원의 소통을 통한 공감의 은혜였는지 모르겠다. 시인은 경주에서 태어나 계림심상소학교, 경주중학교를 다니면서 그 공감을 일깨운 뒤 경희대 국문과에서 공부하며 다진 듯하다. 내남초등학교 등에서 교사를 지낸 뒤 선덕여고 교감으로 퇴직하기까지 30여 년 동안 교직생활을 할 때도, 그는 시인으로 가르치고 아이들과 소통하며 공감하는 인간의 심성을 알려주었다. '대구문학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꾼 '문예창작원'을 열어 문학 강좌를 통해 20년 넘도록 문인 발굴에 노력한 일도 그렇고, 열정적인 창작활동으로 '미간' '모양성' '바람아 문둥아' '신라유물시초' '잡초기' 등 16권에 달하는 시집을 발간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경주시 충효동의 '평사리가는길' 식당 뒷길로 500m 쯤 오르면 제비고개라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이 나타나는데, 작년 가을 이곳에 박주일 시인의 시비가 세워졌다. 나는 시비 앞에 서서 멀리 바람의 등반을 바라본다. 이 언덕에 앉아 날마다 손자를 기다리던 시인의 할머니를 또 생각한다. 만상과 한없이 공감하고자 한 시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간혹 피는 꽃, 무성한 숲, 지는 잎들을 한없이 어루만지며, 제일 낮은 곳, 가장 어둡고 미세한 부분까지도 내 피 속에 담아 삭히고, 술로 빚으면서 당당히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