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 맞불을 놓은 태극기 집회에서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 신중현의 아들인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박사모의 집회에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박정희 통치시절 '박정희 찬가'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하자 신중현의 노래 거의 대부분을 금지곡으로 지정해 버렸던 사건이 있으니 박사모가 그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한 말에 일리가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수많은 대중가요들이 금지곡으로 묶여 전파를 타지 못했고 대중들은 지하에서 그 노래들을 불렀다. 가요뿐만 아니라 영화나 공연, 심지어 소설이나 시 등 본격예술에도 '검열(檢閱)'이라는 단계를 거쳤다. 체제에 부정적인 성향을 띄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검열에서 덜커덕 걸렸다.  심지어 이정환의 소설 '순자야 문 열어라'는 전두환 정권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 '영부인'의 이름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그 소설을 각색해 미리 제작됐던 동명의 영화도 상영 금지됐다. 한석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음란서생'은 엄중한 윤리적 틀을 가진 조선시대에 음란소설을 쓰는 사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국 그 음란소설은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고 궁중의 스캔들로까지 번져 작가가 고초를 겪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줄곧 '성'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관객들을 현혹하지만 저변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매우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화예술인들의 치열한 저항은 계속됐다. 80년대 중반 문민정부가 움을 트면서 정태춘이라는 가수가 검열 철폐를 위해 싸움을 걸었다.  당시 그의 노래 대부분은 검열에 걸려 금지곡이 된 상태였다. 정태춘이 자신의 노래를 포함한 금지곡으로 분류된 노래를 해금해야 한다는 투쟁을 벌일 때 최백호는 사회적 혼란과 가치관의 혼돈을 주는 곡들은 여전히 금지곡으로 묶어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두 사람이 팽팽하게 대립한 적이 있다. 결국 민주화 운동 이후 금지곡들은 대거 풀렸고 우리 문화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우리의 대중가요사상 60년대~80년대에 만들어졌던 노래들은 의식과 메시지가 분명하고 민주사회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곡들이 많다. 100%에 가깝게 사랑타령만 늘어놓는 지금의 대중가요와는 찬양지차다. 그 노래들은 '선동'이 아니라 '삶의 양식'이었다. 최근 국정농단의 주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다. 누가 이 명단을 작성했느냐의 논란에 빠져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작성 주체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사회에 과연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는 것이 핵심이다. 더구나 군사정권 시절 방송금지, 혹은 출간, 상영금지라는 철퇴를 내린 것보다 더 교묘하게, 리스트를 숨겨두고 해당 문화예술인들 혹은 단체에 정부 지원금을 주지 않았다고 하니 더 비열하고 저속하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는지 이 정부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새누리당 이정현 전 대표가 세월호 사고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을 하면서 KBS 보도국장에게 보도 논조에 항의하는 녹취록이 공개된 것도 이 정부가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언론마저 장악하려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기가 막힌 사실이 벌어졌다. 그것도 국민들은 모르는 상태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중성을 보는 대목이다. 국민들은 철저하게 속았다. 어느 날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 한 대학생이 "대통령님, 피부가 너무 고우신데 혹시 관리를 받으시나요?"라고 물었더니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마음을 곱게 쓰면 피부가 고와져요"라고 대답한 사람이 대통령이다. 비선 의료진에 의해 성형시술을 받았다는 정황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난 후 그 대답이 새롭게 관심을 끄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유린(蹂躪)당했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했고 심지어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했다. 문화 예술이 자유롭지 못한 나라는 정체성이 사라진 나라다. 대통령은 국민의 나라를 빼앗아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 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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