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충신(忠臣)'은 스스로 충신이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간신(奸臣)들은 유난히 애국을 강조하고 스스로 충심(忠心)을 자랑삼는다. 태극기를 머리에 꽂고, 양 손에 드는 것도 부족하여 아예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옷까지 해 입고 다니는 사람들. 그들이 과연 애국자일까? 미인은 그리 짙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남이 그 미모를 알아본다. 그런데 보통 매우 짙은 화장을 하고 다니는 여자들 치고 그리 미인은 없는 법이다. 아마도 자신의 추함을 알기에, 짙은 화장으로 본래 모습을 가리려는 게 아닐까? 태극기로 온 몸을 가려 애국자임을 자랑 말고, 진실로 애국하려거든 나라 걱정은 좀 차치(且置)하고 가까이 있는 이웃이나 먼저 좀 살펴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진다. 국가는 '공동 운명체'이다. 그 국가라는 공동체의 일원인 개인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바로 그 구성원인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우는 것이 그 첫걸음일 것이다. 그런데 서로 그렇게 미워하고, 반목하면서 애국은 무슨 얼어 죽을 애국인가? 천하에 못생긴 여자를 앞에 두고 아무리 사랑을 강조한들 어느 남자가 그 여인을 연모할까? 그러나 아름다운 여인은 아무도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모든 남성들이 그녀를 사랑하고 싶어 한다. 내가 정녕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조국이면 뉘라서 애국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휴일도 없이 하루 12시간의 노동을 해도 생계조차 어려운데 어떤 사람들은 타인들의 노동과 소득에 기생(寄生)하여 호사(豪奢)를 누리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입으로만 애국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권력은 대중이 그 숙주(宿主)이고, 기득권은 비기득권이 있어 존재한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민은 그 국가를 버리게 될 수도 있다. 애국심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며, 지극히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당연한 집단 감정이다. 모든 나라가 외침(外侵)에 의해 멸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환(內患)이 외침을 부르는 것이며, 이는 마치 사람이 병으로 죽지만 심신쇠약이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영양을 고루 섭취하고 혈액순환이 좋아 모든 장기(臟器)가 건강한 사람은 따로 보약이 필요치 않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진실로 공정하고 건강하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국방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허구한 날 반목하고 대립하여 내환을 키우면서 국방비만 증액하는 것은, 음주, 흡연, 과로에다 몸에 해로운 짓만 골라하면서, '건강'을 열심히 외치고 복용 약의 양을 늘려가는 우행(愚行)과 다르지 않다. 애국과 국방은 소리 높은 구호(口號)나 국방비 지출 규모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다. 사회의 모든 가용자산이 골고루 배분되고 효율적으로 쓰여 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실천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자발적 연대의식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국방은 수단일 뿐이며 목적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자하는 마음이 애국이요 국방이 아닌가? 특정인들만 천국인 나라는 공동체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수단이 정당화 되지 않는다. 그 참혹했던 6·25 전쟁의 원인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보이지만, 사실은 우익(右翼)과 좌익(左翼)으로 갈라진 내분(內紛)이 더 큰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想起)하자. 이제 그만 촛불과 태극기가 광화문에서 모두 사라지고, 좀 함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