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대리인단이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제출한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답변서'는 참사가 일어난 지 1001일 만에 나온 것이다. 이날 내놓은 답변서는 그동안 수많은 의혹과 국민의 요구, 피의자들의 소송과정에서 요구한 진실규명에 대한 해명 중 하나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재했던 '이것이 팩트입니다' 이후의 공식 문서다. A4용지 19쪽에 이르는 답변서에 대리인단은 그날 대통령이 당시 관저에서 근무했던 이유는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었고 '그날따라 대통령의 신체 컨디션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관저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오전 10시 첫 보고를 받았고 오후 3시가 돼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그동안 관저에서 보고서를 검토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보고서 중에는 자율형 사립고, 기초연금법, 일본 대사 오찬 회동 등 사고와 관계없는 보고서도 포함돼 있었다. 이날 대리인단이 제출한 답변서에 대해 헌재의 이진성 재판관은 내용이 부족하니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답변서에 명시된 사적인 행적은 오후 3시 35분, 약 20분 동안 이뤄진 머리손질뿐이다. 답변서 제출 전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철저히 준비 중"이라고 말했으니 이제는 더 자세한 답변이 나오기는 글렀다.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에는 오전 시간이 비어있다. 이 시간은 승객 구조에 있어서 골든타임이다. 답변서대로라면 새로 추가된 대통령의 그 날 행적은 오후 12시54분 행정자치비서관의 서면보고, 1시30분 국가안보실의 상황 확인, 2시23분 해경의 구조 관련 오류 보고, 오후 3시35분 미용 담당의 대통령 머리 손질, 3시45분 사회안전비서관의 말씀자료 보고가 전부다. 그마저도 올림머리 손질을 빼면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사고를 처음 TV로 본 시간은 12시를 넘겨 점심을 먹으면서라고 했다. 꽃같은 국민이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 있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고 선서까지 한 대통령이 골든타임을 다 놓치고 그나마 TV를 보고 상황 인식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3시가 넘도록 사태가 심각한 줄 모르고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다니 대통령 본인의 문제도 있지만 청와대 비서진의 태도도 심각하다. 당장이라도 대통령을 찾아나서야 하고, 대통령과 청와대의 해명대로 그날 관저에 있었다면 국가안보실장 정도라면 관저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보고를 했어야 옳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대통령은 사고를 인지하고 나서 곧바로 중대본으로 버선발로 뛰쳐나가야 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올림머리가 문제였다면 모자라도 눌러쓰고 나가야 했다. 오전 행적이 비어 있는 까닭이 수만번 양보해서 컨디션이 안 좋아 독한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10시 이후 국가안보실장의 유선보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비상상황에 자율형 사립고, 기초연금법, 일본 대사 오찬 회동 등의 터무니없는 업무보고를 받고 있었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 또, 상황인식이 끝나고 나서도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면, 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가 위기상황에 대처할 의지가 없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또, 중대본에 잠시 다녀와 저녁식사를 들이밀었을 때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다는 관저 조리장의 증언이 맞다면 세상에, 우리는 그런 대통령을 뽑고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의 국정 운영을 맡겼다는 말이 된다. 최순실의 국정농단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세월호 7시간은 반드시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 이것은 대통령의 법적 책임 이전에 국민의 정서에 관한 문제다. 정신이 바로 박힌 국민이라면 이 참사에 얼마나 큰 고통과 충격을 받았는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통령은 그 날의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별별 해괴한 해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그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 이미 다 알고 있다. 다만 대통령의 입으로 밝히고 진심어린 사과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