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의복 속에 녹쓴 무기나마 감추고 칼바람 몰아치는 광야를 헤매며, 오로지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한 몸을 바친 우리 선조들도 많았다. 그런데 주먹밥 한 번 먹어보지 않고, 일본군을 향해 총 한 발 쏘아보지도 못한 사람이 광복이 되자, 갑자기 태평양을 건너 비행기를 타고 나타나더니 애국지사가 되고, 국부(國父)로 추앙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권안보를 위해, 전쟁 틈을 이용해 '반공주의자'로 신분 세탁을 한 후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해 처벌은커녕 오히려 그들을 중용(重用)했다. 또 그들은 물론, 그들의 후손들까지 적산(敵産)기득권을 유지시켜 주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그것도 부족하여 아예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던 음모가 바로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사태의 본질이 아닌가? 국민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는 그렇게도 창의적이며 창조적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오직 '모릅니다'로 아예 무능한 바보 행세를 하며 법망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또 태평양 건너에서 또 다른 애국지사(?)를 모셔와 끝까지 기득권을 이어가려는 모의(謀議)도 보인다. 지금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이다.특히 태평양 건너에서는 예측불허의 미(美) 국수주의자가 우리 안보와 경제의 위험 변수가 되고 있다. 또 한반도 북쪽에는 철부지 하나가 호시탐탐 남쪽을 향한 불장난을 준비하고 있다. 거기에다 늘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논리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실익은 챙기되 이익은 주지 않는 음흉한 대륙의 거인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남쪽 현해탄 건너에서는 자신들이 오래전 한반도에 뿌린 씨가 어떻게 발아하여 지금 어떤 결과를 만들고 있는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혼란한 국면이 그들에겐 그렇게도 재미있는 가십거리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사태는 한 두 사람의 특정인이 만든 단순한 비리사건이 아니며, 해방이후 우리사회에 누적된 적폐가 만들어 낸 종합판 국치사건(國恥事件)이라 해야 한다. 전사(戰史)에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했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대 학살 전쟁까지 치르며 과연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이런 것인가? 자유, 평등, 박애! 우리가 그토록 피땀으로 지키려 했던 민주공화국이었지만,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나라. 어떤 학생은 하루 16시간을 공부해도 어렵지만 어떤 학생은 말(馬)만 타고 있어도 명문대학에 들어가 자동으로 사회적 지위와 부를 세습(世襲)받을 수 있는 나라. 같은 현장에서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없는 나라. 지역을 갈라놓고, 사상이 검정되며, 무리지어 반목하는 나라. 누구에게는 천국이요 누구에게는 지옥인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예로부터 어진 목민관(牧民官)은 '민이 고충이 많아 그 잠을 설친다' 하였다. 세월호 7시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촌각을 방심할 수 없는 국내외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는 아닐 것이다. 옛부터 나라를 망하게 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항상 나이어린 철부지나 아둔한 군주를 옹립하는 이유는 그들의 '실세유지'와 '권력농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왕조국가가 아니며,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현대 국가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의 것이며, 어느 누구도 그 권력을 남용하거나 독점할 수 없도록 합의 되었다. 과연 헌법개정을 포함한 또 다른 추가 합의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합의된 사항만 제대로 지켰으면 오늘과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모두 미친 것 같아도 미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으며, 악인들만 득실거리는 것 같아도 선한 사람이 더 많다. 그리고 자기들이 아니면 안 되는 것 같아도 되도록 할 사람이 많다. 정치를 잘못 해서 망한 나라는 있어도 정치할 사람이 없어 망한 나라는 없었다는 얘기를 반드시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