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 보래이. 사람 한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쿵둥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같이 기계(杞溪)장도 서고. 허연 산 뿌리 타고 내려 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베. 앙 그렁가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목발 받쳐 놓고 어슬어슬한 산 비알 바라보며 한 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어슬어슬한 산 비알, 한잔 술, 그게 다 유정한 기라 2017년 새해가 시작 된지도 벌써 3주일이 흘렀다. 새해 아침 다짐했던 일들이 작심삼일이 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본다. 겸손한 마음으로 살고 하기 싫은 일들은 먼저 실천하고 작은 목표부터 꼭꼭 이루어 나가는 실천이 중요하다. 목월의 시, '기계(杞溪)장날'을 읽다가 갑자기 '기계장날' 시비가 보고 싶었다. 기계면 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산들다방 바로 앞에 목월 시비가 있어요" 친절한 안내에 따라 '산들 다방'이름만 떠올리며 '안강들판' 지나 '기계들판'쪽으로 차를 몰았다. 행정구역은 포항시였지만 기계는 경주시와 딱 붙어 있었다. 기계는, 경주 시내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정도 가까운 곳이었지만 내게는 멀리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경주에 살면서도 기계를 가보지 않았고 더구나 기계 장날(1일·6일)은 초행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의 기계장날은 사람냄새가 풀풀 풍기는 아름다운 곳이었나 보다. 산들다방 바로 맞은편에 화강암으로 된 근사한 목월의 시비가 서 있었다. 선생님을 보듯 반가웠다. 목월의 '기계장날' 묘사를 보자. 그렁저렁/그저 살믄/오늘같이 기계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 와 아우님도 /만나 잖 는가베/앙 그렁가잉/이 사람아.(중략) 오늘 같은 날/지게목발 받쳐 놓고/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 잔 술로/소회도 풀잖는가 이 시도 목월의 '경상도의 가랑잎' 시집에 나온다. 소박한 시골사람들의 인정어린 소통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시인은 손에 잡힐 듯 묘사 하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의 울림이 얼마나 절묘한가. 허연 산 뿌리 타고 몇 십리를 걸어와 장날에 모여서 지게목발 받쳐두고 쌓인 이야기로 한잔 술로 목을 축이는 이웃 촌노들의 모습, 지금은 사라진 아름다운 옛 장날 풍경이다. 그러나 그날 내가 본 요즈음의 '기계장날'은 한산했다. 사람냄새 풀풀거리는 옛 장날 풍경은 아니었다. 낯선 골목길에 드문드문 보이는 노점상들. 버스 터미널도 한산하다 못해 쓸쓸한 기계였다. 지게목발 받쳐두고 한잔 술로 목을 축이는 따스한 옛 풍정은 보이지 않았다. 옛 추억은 아름답고 그날 '기계장날' 시비에 1월의 햇살만이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