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나 추석 명절에는 차례를 모시고 난 뒤 음복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덕담을 주고받은 뒤 돌아가는 세상사를 펼쳐낸다. 올해는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걱정을 쏟아낼 것이 분명하고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내놓고 갑론을박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명절날 담화는 서로의 안부로 시작해서 정치적인 문제로 번져가고 결국은 신구 세대의 입씨름으로 마무리되기 일쑤다. 올해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5천년 역사상 주권자인 국민이 제대로 된 주권을 행사한 적이 거의 없었다. 헌법과 사회적 통념은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국민이라고 명시하거나 인정해 두고 그동안 집권자와 권력자, 재벌에 의해 국가의 주권자들은 휘둘려 왔다. 힘없이 무너지거나 이유 없이 당해왔다.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인 유아인이 400만원의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회사를 찾아온 노동자에게 한 말 '어이가 없네'라고 말한다. 삼성이 대통령의 강압으로 수백억원의 돈을 정유라와 정체불명의 재단에 기부했고, 국내 대기업들도 줄줄이 삼성처럼 맥없이 수백, 수십억원의 돈을 내놓았으니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춥고 쓸쓸한 설을 맞이하게 될 노동자들은 어떤 자괴감을 가질까.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 국민들의 강인하고 정직하고 성실함은 세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어느 나라에 가서도 우리의 교민들은 열심히 일해 그 사회에서 인정받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이 나라의 위정자와 자본가들은 여전히 세월이 흘러도 썩은 채 역사의 전면에서 살아왔다. 이번 설의 음복상에서 벌어질 설전도 여전히 엇갈리는 의견으로 시끄러울 것이다. 연세가 든 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이렇게 부유하게 만든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강조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일정부분 감싸려 할 것이고 젊은 자손들은 그런 구세대의 맹목적인 생각이 이 나라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대들 것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의 미래는 가시밭길이다. 이상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