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신문=장성재 기자]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직업은 당연 관직이었다.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야말로 개인이 입신양명하는 길인 동시에 부모에게는 효도하며 가문을 명예롭게 하는 길이었다. 어릴 때부터 과거급제라는 목표를 향해 학업에 정진해야 하는 양반가의 자제들은 '승경도' 놀이를 하며 청운의 꿈을 꾸었다. 승경도 놀이는 요즘 말하는 ‘인생게임’ 류와 같은 일종의 보드게임이다. 말판이 조선시대 복잡한 품계와 종별에 따른 관직도표로 이루어져 있는데, 최고 영의정부터 최하 파직(罷職)이 있고, 그 사이에 유배(流配), 좌천(左遷), 사사(賜死) 등 벼슬살이 동안 처할 수 있는 위기가 중간중간 배치되어 있다. 승경도 놀이는 관료시스템을 이해하는 교육방법인 동시에 관직진출과 승진을 꿈꾸게 하는 동기부여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승경도 놀이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어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퍼져나갔는데, 홍문관 관리들이 이 놀이를 하면서 밤을 샜다던가, 공부는 하지 않고 승경도 놀이만 해서 경쟁만 부추긴다던가 하는 비판이 있을 정도였다. 평소 스스로를 겸양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벼슬살이 하는 관료들이 승경도 놀이를 통해서는 자신의 숨겨놓은 야망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카타르시스 기능이 작용했던 것이다.또한 승경도 놀이는 주로 정월(음력 1월)에 많이 했는데 새해가 시작되면서 승경도 놀이로 자신의 한해 운을 점쳐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인사행정은 12월에 인사고과를 실시해 1월에 인사이동이 대규모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인사이동의 결과는 승정원에서 나오는 조보(오늘날의 관보)에 실려서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의 각 고을에까지 알려졌다. 관직에 나가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방에 내려와 있는 양반들에게도 인사이동에 대한 소식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한국국학진흥원이 2018년 신년특집으로 펴낸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월호에 실린 '승진'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의 승진 문제 혹은 인사 문제로 인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일기로 소개되어 있다. 계암일록(溪巖日錄)을 쓴 김령(1603~1641)은 영의정 류영경이 벼슬자리를 놓고 7년간 휘두른 무소불위 권력을 비판하고 있으며, 영영일기(嶺營日記)를 쓴 조재호(1702~1762)는 영조의 첫째아들 효장세자의 비인 현빈의 친오빠로서 그 후광에 힘입어 병조판서를 제수 받은 지 이십 일만에 이조판서를 제수받자 이를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내용을 일기에 적고 있다. 이처럼 수직적인 사회구조와 정치권력의 엄중한 대립관계 속에서 인사이동과 승진에 일희일비하며 살얼음판 같은 조직생활을 하고 있는 조선시대 관료들의 모습들이 일기류 곳곳에서 등장해 흥미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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