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본 고장인 대구의 가치를 높게 살려 의미있는 역할을 한 선배로 기억되고 싶다." 지난 2015년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수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최현묵 관장은 그야말로 대구의 문화예술과 함께 한 산증인이다. 근대화 이후 모든 문화예술의 시발점이 된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대구의 문화예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온 그는 어느덧 지금에 와서는 대구 경북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계의 거목으로써 널리 알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대구컬러풀축제조직위 축제감독과 2011대구세계육상대회조직위 문화행사, 개폐회식팀장 등을 역임하면서 대구를 '문화도시'로 우뚝 세운 그의 화려한 업적 뒤에는 탄탄한 그의 이력이 뒷받침되고 있다. 1985년 삼성문예상 장막극 부문에 '메야마이다'가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화초', 1992년 국립극장 장막극 부문 '불' 등이 당선되면서 최 관장은 희곡 부문에 있어 자신의 능력을 전국에 알렸다. 이 뿐만이 아니다. '뜨거운 땅'으로 1995년 전국연극제에서 수여하는 희곡상을 수상한데 이어 2012년에는 '전국연극제를 빛낸 30'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최근 만해 한용운의 삶을 다룬 '끽다거'와 대구의 연극 역사가 담긴 '대구연극사'를 출간하면서 대구 지역 연극계가 갖고 있는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최 관장은 "대구 지역 문화예술의 우수성은 현진건 등 대구 출신의 많은 문학가들이 우리나라의 현대 문학을 이끈 것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며 "이러한 영향을 받아 연극을 접하게 됐기에 많은 행운이 뒤따른 것 같다"고 밝혔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구에서 하사관으로 군복무를 하게 된 것을 인연으로 정착하게 됐다는 그는 영남대 영어영문학과를 다니던 중 극단 처용의 창단 공연 '저승 훨훨 건너가소'의 작가로 연극계의 첫 입문을 하게 된다. 비록 '밥을 굶는다는'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의 문화예술계의 특성상 잠시 연극계를 떠나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희곡사랑'은 결국 그의 손을 다시 희곡을 쓰기 위한 펜대로 향하게 만들었고 30여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대구 문화예술계의 거장으로써 확고한 입지를 굳히게 했다. 최 관장은 "대구는 나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물을 안겨준 곳이다"면서 "하지만 아직도 열악한 여건으로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대구 지역 문화예술의 부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다음달부터 본격 추진되는 대구문화예술회관 공연장 '팔공홀'의 리모델링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팔공홀'은 30여년된 노후공연장으로 낡은 시설에 따른 다양한 무대 매커니즘을 실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무대였다. 부분적인 개보수는 있었지만 변화하는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과는 동떨어져 많은 지적을 받아왔던 곳이기도 하다. 최 관장은 '팔공홀' 리모델링으로 대구시민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공연장으로 거듭나 지역 문화예술계와 대구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최 관장은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 등 국내에서 펼쳐지는 각종 행사들이 서울에 이어 부산으로 향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대구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강조하며 "이유는 바로 마케팅 인구에 있다. 대구는 문화중심지로써 마산, 거창, 경주 등 인근 도시에서 찾는 사람들이 500만명에 육박하지만 부산은 바닷가에 갇혀 그 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팔공홀을 국내 최고의 무대로 구축해 대구 문화예술이 국내 최고로 성장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지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