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신문=장성재 기자] 조선말기의 대표적 실학자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의 글씨 3점이 20일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추사 김정희(1786~1856)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의 세도정치 기간에 문인이자 정치가로 활동했다. 금석문(金石文)의 서예적 가치를 재평가한 추사체(秋史體)를 창안해 한국 서예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문화재청이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김정희 필 대팽고회, 차호호공, 침계 3건의 서예는 그의 학문적·예술적 관심과 재능이 구현된 작품이다. '김정희 필 대팽고회'는 그가 세상을 뜬 해인 1856년(철종 7년)에 쓴 만년작이다. 내용은 중국 명나라 문인 오종잠의 '중추가연'이라는 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푸짐하게 차린 음식은 두부·오이·생강·나물이고, 성대한 연회는 부부·아들딸·손자라네(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라는 글귀를 쓴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이 가장 이상적인 경지라는 내용에 걸맞게 꾸밈이 없는 소박한 필치로 붓을 자유자재로 운용해 노 서예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응축되어 있는 김정희 만년의 대표작이다. '김정희 필 차호호공'은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던 김정희의 학문이 예술과 결합된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필획 사이의 간격이 넉넉하고 자획의 굵기가 다양하며, 빠른 붓질로 속도감 있는 효과를 내는 등 운필의 멋을 최대한 살려 김정희 서예의 수작으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김정희 필 침계'는 김정희와 교유한 판서 윤정현(1793~1874)의 호이다. 발문에 의하면 윤정현이 김정희한테 자신의 호를 써 달라고 부탁했으나 한나라 예서에 '침'자가 없기 때문에 30년간 고민하다가 해서(일점일획을 정확히 독립시켜 쓴 서체)와 예서를 합한 서체로 써 주었다고 한다. 해서와 예서의 필법을 혼합해서 쓴 ‘침계’는 김정희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구성과 필법에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김정희의 학문·예술·인품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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