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는 계속 된다.” 그런 판결에 웬 시간이 2년이나 걸렸는지 헌법재판소의 늑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2005년12월30일 당시 제1야당인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의 현행 종부세 법 개정안 표결에서 민주당 김종인 의원은 “세금이 헌법에 합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충분히 따져보지도 않고 내놓은 조치가 바로 종부세”라며 법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경제학 박사다.
집이 남편 이름으로 된 부인들은 요즘 친구들과 헌재 판결을 비판하는 전화를 주고 받는다. 요지는 왜 부부 합산과세만 위헌이냐는 불만이다. 실질적으로는 남편과 공동으로 재산을 형성했는데 왜 굳이 재산을 쪼개 놓은 자만 보호하느냐는 볼멘소리다. 야당 주장처럼 "헌재 재판관들은 재산을 미리 분할해놓았나?" 하는 소리도 한다.
헌재는 국세가 환급되더라도 종부세가 그간 4조여 원을 재정에 기여하도록 도왔고 부동산 투기억제에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밥값은 했다고 칭찬해줘야 할 것인가?
헌재의 판결은 일부 아귀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합산은 헌법 위반이고 주거목적 1주택 장기보유는 헌법 불합치이고……. 과도한 세금이 아니라면서도 자산이나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과세하는 데는 예외규정을 둬야 한다고 했다. 그럼 뭐가 과도하지 않다는 말인가? 헌재의 판결은 정말 이곳저곳 눈치를 보며 따라가는 헤엄치기이다. 모호한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해석에 따라 법개정을 놓고 여야는 국회에서 미증유의 정쟁을 일으키고 납세자들은 오랜 기간 춤추는 뉴스에 웃다가 울다가 할 것이다.
일부 신문들은 "노무현의 종부세 대못이 뽑혔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지만 김칫국부터 마시는 이야기다. 한 번 만든 세금은 그 세금을 ‘뜯는’ 단맛에 취해 있는 권력이, 그것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절대로 놓지 않는다. 중앙과 지방이 싸우고,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가 으르렁대면서 종부세 전액이 지방으로 가는 마당에 말해서 무엇하랴.
그러니 중산층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깨지거나 말거나 세금 고지서가 날아오면 빚을 내서라도 낼 도리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큰집’에 들어가신 당시 국세청장이 종부세 납부율이 99%라고 자랑했는데 국가에서 강요하면 안 내고 배길 도리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이제 종부세 개편을 둘러싸고 지방의 시도지사들은 물론, 지방출신 국회의원들도 ‘돈 배급’이 줄어든다고 난리를 피울 것이다. 그들은 수도권 규제완화에도 수도권의 발목이 아니라 목덜미를 잡고 ‘같이 물에 빠져 죽자’고 덤벼 들었다.
그들은 종부세가 대강 유지되더라도 서울의 재정이 넉넉해서 지방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당고개라는 지하철 역이 있다. 그곳은 역세권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는 낙후된 골목길이 역전에 있다. 그런데도 종부세가 이런 곳에는 한 푼 쓰이지 않고 모두 지방으로 가서 때로는 시도 의원들의 외유 비용과 초고급 자동차 구입에도 쓰였을 것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동네 지하철 이야기도 해볼까. 나는 9호선이 개통되면 가장 가까운 역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게 된다. 그럼 그 지하철은 언제 계획되었는가. 김영삼 대통령 집권 시절이던 1990년대의 아득한 옛날이다. 그간 우리 구 사람들이 낸 종부세를 보탰다면 벌써 완공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처음에 지하철 건설 소식에 나도, 아내도, 동네 사람들도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간, 외환위기가 계획을 저 멀리 밀어버렸다. 제대로 공사가 시작된 것은 2000년을 한참 지나서부터였다. 몇 년간 철판 길을 다닌 것 같은데 올해 여름부터 길을 덮은 철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년 5월에 개통된다던가?
지방 사람들이 서울은 다 잘 살고 돈이 넘쳐서 주체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사례로 드는 것이다. 시골에서 온 노인들이 이런 말을 하신다. “서울 노인 불쌍하다”. 요즘 시골이야 전체적인 고급 문화시설은 서울에 처지지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철 따라 수확하니 먹을 것 풍부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첨단 헬스 시설까지 갖춘 현대식 마을회관에서 노인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밥 해 먹고 공기 좋은 하루 하루의 생활이 너무나 즐겁단다.
그럼 서울은? 당고개가 아니더라도 종로 3가에서 탑골 공원, 안국동에 이르기까지 일대가 가난한 ‘노인들의 특구’다. 변변한 노인 시설은 없고 ‘쪼잔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만 넘친다.
결론이다. 종부세가 아니더라도 얼렁뚱땅 만드는 법률은 좋은 법률이 되기 어렵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헌재의 판결이 나쁜 판결”이라고 했다는데 그럼 나쁜 법률이 나쁘다는 판결이 나쁘다는 말인가? 뿌린 대로 거둔다. 그것을 부정하면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헌재를 비난할 게 아니라 제1야당의 퇴장 속에 헌법을 위반한 법률을 강행하여 국민을 괴롭힌 데 대해 가책하고 사과하는 것이 참된 정치인의 금도(襟度)일 것이다. 하기야 그런 사고방식으로 정권을 운영했으니 대선과 총선에서 연거푸 깨진 것이고 입으론 ‘국민 편’이라면서 편협한 편 가르기로 사사건건 달려드니 이 나라의 선진국 길이 요원한 것이다.
김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