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숭례문을 통과한 도로가 드러났다. 숭례문을 발굴, 조사중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지표 30~60㎝ 아래에서 이 도로면을 확인했다. 갈색 사질토를 6~8차례(130~140㎝) 가량 쌓아 바닥을 다졌다. 그 위에 비교적 큰 부정형 박석을 덮어 노면을 포장하는 등 매우 정교하게 축조됐다. 도로 중앙부에서는 박석이 확인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전차선로를 가설하면서 제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확인되는 도로의 폭은 숭례문 밖 25m, 숭례문 안 26m 정도다. 숭례문 내외부에서 19세기 조선후기에서 20세기 대한제국 시기의 민가터와 건물터 등 조선시대 전반을 아우르는 건물의 흔적들도 확인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자료에서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민가들이 즐비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번 발굴조사에서 이러한 민가의 흔적들을 실제로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민가터 3동을 비롯해 내부 구들시설 1기, 외부 배수시설 3기가 확인됐다. 또 숭례문 내부 북서편 지표 아래 3m 지점에서 조선 전기의 건물터로 추정되는 원형 잡석적심 3기가 확인됐다. 출토 유물도 다양하다. 백자 향로 등 백자 제기(祭器)류와 분청사기, 청화백자 등 조선시대 도자기류와 기와편, 전돌편 등과 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외국 자기들을 다수 확인됐다. 일제 강점기 청동주화 등 동전류와 벼루 등도 출토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 후기 숭례문 주변 도로면의 높이와 당시 축조기법을 확인해 향후 숭례문 주변 지형 복원을 위한 고증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전기에서 구한말에 이르는 건물터를 확인해 이 일대의 변화 양상도 파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발굴조사단은 2009년 숭례문 가림막 바깥 공원지역, 2010년 숭례문 주변과 동서성곽 지역을 조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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