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기 통일 신라시대에 투조 기법으로 만들어낸 금동귀면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경주 황용사에서 발견됐다. 투조(透彫) 기법은 금속판의 일부를 끌이나 톱으로 도려내고, 그 남은 부분을 무늬로 나타내는 조금 기법이다.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지난 7월 황용사지의 시굴조사를 했고 투조 금동귀면, 석불 등의 유물을 발견했다고 4일 밝혔다.
유물의 발견 장소인 황용사는 경주 보문단지에서 감포 방면으로 넘어가는 동대봉산(옛 은점산) 절골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서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황룡사지와는 다른 사찰이다.
조사 전부터 황용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쌍탑을 비롯해 고려시대 승탑, 초석, 석축들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알려진 것에 비해 그동안 황용사지는 정비 및 보수가 진행되지 않았으며 조사착수 당시에도 여전히 산죽, 수목 등이 유구와 뒤엉킨 채 일부는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는 황용사지에 대한 조사가 시급함을 인지하고 사역과 성격을 확인하고자 지난 7월 추정사역에 대한 폭넓은 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황용사는 계곡 주변에 크고 작은 석축 대지를 조성한 후 건물을 축조한 산지형 가람으로 통일신라시대 ~ 조선시대 건물지 5동, 탑지, 축대, 석렬 등 다양한 유구가 중복되어 있는 것이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특히, 현재 쌍탑이 남아있는 구역의 경우 고려시대와 관련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 고려시대에는 주변의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중창되는 등 변화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황용사의 사역이 현재 추정 사역보다 훨씬 넓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주요 출토유물은 걸이가 있는 투조 금동귀면, 석불, 소조불, 용두편, 하대석 편 등 사찰의 격을 나타내는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황용사의 위상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준다.
최인창 불교문화재연구소 팀장은 "금동귀면은 높이 15㎝인 성인 손바닥 만한 크기로 입에는 고리가 달렸으며, 입체감이 돋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서 "국내에 유사한 사례가 없어 지금은 용도를 알 수 없지만 장식품일 수도 있고, 고리에 무언가를 걸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황용사 주지 도연 스님은 "황용사는 선덕여왕 2년(633년)에 창건돼 당시 명칭은 황둔사(黃芚寺)라고 불렸으며, 소성왕대에 황용사(黃龍寺)로 바뀌어 이후 중창, 중수 등의 과정을 겪으며 계속해서 사세를 유지해 왔다"면서 "앞으로 황용사에 대한 추가 조사 및 정비가 잘 이루어져 경주지역의 또 다른 불교문화 명소는 물론 시민들이 힐링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탄생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과 함께 2013년부터 전국의 (비지정)폐사지를 대상으로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 사업’을 매년 진행 중이다. 경주 황용사지는 올해 두 번째 조사사업이며, 이에 대한 조사 성과를 공개하는 현장설명회는 오는 6일 오후 2시30분 경주시 황용동 황용사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