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스타 선수 출신 박정태 씨가 만취 상태에서 버스 기사와 시비를 벌이다 차량 운행을 방해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사실이 알려져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18일 부산 금정경찰서에 따르면 박정태씨는 특정 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운전자 폭행)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박씨를 불구속 입건됐다.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 18일 오전 0시 35분께 부산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사거리 인근 편의점 앞 편도 2차로 중 1차로에 차를 세워두고 대리운전기사를 불렀고 당시 근처를 지나던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길가에 세워 둔 박씨 차량이 운행에 방해가 된다며 경음기를 수초간 울리고 차량 옮겨달라고 요구했다.이동 주차 문제로 시내버스 기사와 말다툼을 벌이게 된 박씨는 결국 술 취한 상태로 자신의 차량을 10∼20m가량 직접 운전해 다른 곳에 주차했다.경찰에 따르면 주차 뒤에도 둘 사이 언쟁은 계속되다가 박씨가 시내버스 열린 문으로 올라타자 버스 기사는 출입문을 닫고 출발했고 박씨는 운전석 옆에서 폭언을 하고 큰 몸동작과 함께 버스 기사가 잡은 운전대를 인도 방향으로 틀기도 했다.박씨가 버스 안에서 운전을 방해하는 동안 버스는 600m가량 달렸고, 승객 4∼5명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박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경찰은 1차 조사를 한 뒤 귀가하도록 했다.경찰은 박씨와 운전기사를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인 뒤 처벌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1969년생으로 올해 나이 쉰 한살인 박정태(朴正泰)는 전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수출신으로 2013년 KBO의 육성 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현재 레인보우 희망재단의 이사장직도 함께 맡고 있다. 부산 대연초, 부산중을 거쳐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야구명문고인 경남고나 부산고가 외면했다기 보다는 스스로 동래고를 선택해 진학한 것이다. 경성대 체육학과(1987학번)를 졸업하고 1991년 1차 지명을 받아 연고 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1993년 5월 23일 태평양전에서 후속 타자의 병살타성 땅볼 때 1루에서 사력을 다해 2루까지 내달린 뒤 슬라이딩하다가 유격수 염경엽과 충돌했고, 이 사고로 발목 복합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아 1995년까지 재활했다.이후에도 그는 숱하게 부상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재기에 성공했다. 그 때문에 붙은 별명이 '탱크'이며, 지금도 그는 롯데 팬들에게는 최동원과 함께 신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뿐만 아니라 타석에 들어서서 몸을 좌우로 흐느적거리면서 방망이에 왼손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독특한 타격 폼인 '흔들 타법'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부상에서 복귀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후반에 부산 지역의 학생 야구선수들이 하나같이 그의 타격 폼을 따라했다. 이에 대해 학생 야구 지도자들의 지적이 잇따르자 그는 공개 석상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타격 폼을 따라하지 말 것을 부탁한 적이 있다.1991년 제 1회 한·일 슈퍼게임 당시 타석에 들어선 그를 보고 일본 덕아웃에서는 큰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가 연거푸 안타를 기록하자 웃음이 싹 사라졌다. 그는 힘을 빼고 치기 위해 왼손을 떼고 타격 준비 자세를 취했다고 한다.1999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였던 펠릭스 호세가 1점차로 추격하는 솔로 홈런을 날리자 흥분한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호세를 향해 물병을 던지고 오물을 투척했다. 이에 화가 난 호세가 배트를 관중석으로 던져 퇴장당했고 그라운드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날린 오물들로 안 좋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급기야 선수단은 짐을 싸기 시작했고 롯데 자이언츠의 몰수패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코치진의 만류로 덕아웃으로 돌아온 선수들을 향해 당시 주장이었던 그가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고 말했던 일화는 매우 유명했다. 경기는 결국 뒤이은 마해영과 임수혁의 홈런과 김민재의 결승 안타, 주형광의 마무리 역투에 힘입어 롯데 자이언츠가 승리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사진 SBS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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