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해치'가 갈수록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 하고 있는 가운데 '영조'와 '이인좌의 난'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4월 8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해치'(극본 김이영/연출 이용석) 33,34회에서는 경종(한승현 분)의 사망과 왕세제 이금(정일우 분)에게 닥친 또한번의 위기가 그려졌다. 경종(한승현 분)이 끝내 밀풍군(정문성 분)의 계략에 의해 죽음을 맞아 충격을 안겼다. 특히 이 과정에서 왕세제 이금(정일우 분)이 자신에게 향할 비난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내의원의 탕제를 물리는 등 경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 눈길을 끌었다.경종은 갑작스레 병환이 악화됐고 이금은 밀풍군이 체포되기 전 내의원을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금은 밀풍군이 계략을 세웠음을 알고 경종에게 내의원 탕약을 들이지 말라고 주장했다.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이금의 결정은 이금을 위험에 빠뜨렸다. 조태구(손병호 분)는 이금에게 "주상전하의 병을 치료할 의지는 있냐"고 물었고 중전(송지인 분)도 이금의 속내를 의심했다. 민진헌(이경영 분)은 "장차 군왕이 되고자 한다면 불구덩이를 피해라. 눈에 보이는 진실도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책임일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금은 책임도 자신이 감내해야 할 것이라며 생각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밀풍군이 사람을 시켜 경종의 탕약에 넣은 것은 해독제가 없는 극독이었다. 이금이 탕약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탕약을 물리면 경종 사망 이유가 독이 아니라 탕약을 물린 이금이 될 것이라는 것이 밀풍군의 계략이었다. 실제로 경종은 세상을 떠났고 끝까지 경종을 살리려 고군분투한 이금에게 경종 사망의 책임을 묻는 이들이 등장했다. 천한 왕자로 무시 당하던 이금은 동생과 동료를 잃은 후 각성했다. 그는 왕세제가 되기까지, 왕세제가 된 후 자신의 왕재를 입증하기까지 수없이 위기에 쳐하며 쉽지 않은 길을 겪어왔다. 이금에게 또한번 시련이 온 상황이다. '해치'에서 그려낸 이금의 위기는 실제 역사와 절묘하게 매치되며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한편 '이인좌의 난'이란 조선 후기 이인좌 등의 소론(少論)이 주도한 반란으로 무신년(戊申年, 1728년)에 일어난 반란이라고 해서 무신란(戊申亂)이라고도 한다. 숙종 때 극심했던 서인과 남인의 당쟁은 서인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집권세력인 서인은 소론과 노론으로 다시 분파되어 당쟁은 계속됐다. 경종 때 소론과 노론의 당쟁은 극심했는데 소론은 경종 연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노론과의 대립에서 일단 승리했다. 하지만 노론이 지지한 영조가 즉위하자 소론은 정치적 위협을 느끼게 됐다. 이에 박필현(朴弼顯) 등 소론의 강경파들은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며 경종의 죽음에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남인들도 일부 가담했다.이들의 거병에는 유민(流民)의 증가, 도적의 치성, 기층 민중의 저항적 분위기가 중요한 바탕이 됐다. 그리해 반군은 지방의 사족과 토호가 지도하고 중간계층이 호응하며, 일반 군사는 점령지의 관군을 동원하거나 돈을 주고 동원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이인좌는 1728년(영조 4) 3월 15일 청주성을 함락하고 경종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퍼뜨리면서 서울로 북상하였으나 24일에 경기도 안성과 죽산에서 관군에 격파되었고, 이인좌는 죽산 일대로 도피하였다가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능지처참되었다. 청주성에 남은 세력도 상당성에서 박민웅(朴敏雄) 등의 창의군에 의해 무너졌다. 영남에서는 정희량(鄭希亮)이 거병하여 안음·거창·합천·함양을 점령하였으나 경상도관찰사가 지휘하는 관군에 토벌당했다. 호남에서는 거병 전에 박필현 등의 가담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당했다.난의 진압에는 병조판서 오명항(吳命恒) 등 소론 인물들이 적극 참여하였으나, 이후 노론의 권력장악이 가속화하였고 소론은 재기불능의 상태가 됐다. 이 사건 이후 정부에서는 지방세력을 억누르는 정책을 강화했고 토착세력에 대한 수령들의 권한이 커져갔다. 또한 이때 반군이 군사를 동원한 여러 방식은 뒤의 홍경래의 난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