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정상급 외교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역할을 분담하는 '투톱 외교'를 강조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한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총리에게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기 위한 중책을 맡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정상외교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대통령 혼자서는 다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며 "그래서 대통령과 총리가 적절히 역할을 분담해 정상급 외교 무대에서 함께 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또 "일본의 의도가 거기에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일본의 조치에 단호하게 맞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번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는 아무런 외교적 협의나 노력 없이 일방적 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했다"며 "일본 정부는 일방적인 압박을 거두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여전히 우리 정부는 일본과 보복적 대응 조치를 맞교환하는 전면전으로 가게 되는 것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의 배경이 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양국간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은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우리 정부와의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또 일본은 지난 12일 열린 한·일 무역당국간 실무회의에서 우리 측을 철저하게 냉대했고, 회의 명칭을 '설명회'라고 고집하며 우리와 협의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미일 고위급 협의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 내에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통하는 이 총리의 역할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총리를 대일 특사로 파견해 양국간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이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 시절 도쿄 특파원을 지냈고,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오랜 기간 한일의원연맹에서 활동했다. 일본측 인사와 통역 없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일본어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는 최근 한일 관계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조짐이 보이자 일본측 인사들과 접촉을 늘리며 문제 해결 방안에 고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5일 한국을 방문한 누카가 후쿠시로 일본 일한의원연맹회장과도 배석자 없이 회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누카가 회장은 이 총리에게 "서로의 입장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