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 있어 이목을 끈다. 바로 한국공예 문화교육센터와 한국진로직업체험센터를 이끌고 있는 장한진 대표가 그 주인공.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는 우연히 배우게 된 풍선아트와 페이스페인팅을 다양한 교육사업과 접목시켜 지금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취업 교육설계사로서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장 대표는 "취미를 알기 전까진 솔직히 꿈이란게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였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일상을 살아왔던 것 같다"며 "그러나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허전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배우게 된 취미가 지금의 저를 세운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장 대표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 계기는 앞서 언급한 지난 2005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취미 삼아 배운 풍선아트와 페이스페인팅 때문이다. 처음엔 결혼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 등 가족의 '특별한 날'을 기념해 즐거움을 주고자 갖게 된 취미였다. 하지만 교육을 수료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방과후 강사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 때부턴 미래를 위한 자신의 역량을 쌓는데 매진하게 됐다.자격증을 취득한 뒤부턴 방과후 강사를 모집하는 학교를 찾아 자신의 키만한 '미키마우스 풍선'을 들고 수시간 동안 시내버스로 이동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방과후 강사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안내가 없었던 당시 시절, 열정이 가득한 자신을 알리겠다는 노력을 보이기 위해 감내한 노력이었다. 장 대표는 "구직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해야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방과후 강사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선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며 "무조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나중에서야 이력서를 갖춰야 한다고 어떤 선생께서 귀띔을 해주셨고 그때부터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갖춰 면접을 보러 다녔다"고 회상했다.이런 노력 끝에 그는 울산 남구 신정동에 위치한 신정초 방과후 수업 강사로 채용됐지만 다음 문제는 강의를 듣는 학생 수였다. 보통은 방과후 수업마다 10명 이상이 구성원을 이루지만 장 대표의 수강생은 8명이 전부였다. 장 대표는 집에서 상당 거리 떨어져 있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 일찍 출근해 학생들과 소통하며 관심을 이끌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재미를 붙였고, 나아가 학부모까지 관심을 보이면서 장 대표의 수업은 분기때마다 수강생들이 크게 늘었다. 1분기에 8명에 불과했던 학생들이 4분기에선 35명의 인원을 기록한 것.장 대표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좋은 결실을 맺게 한 것 같다. 강사로서 첫 발을 내딘 것에 감사했고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감사했다"며 "감사한 마음은 노력의 원동력이 됐고 지금의 제가 될 수 있는 기반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그는 방과후 강사로 받은 급여 모두를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사용했다. 교육생에 따라서 교육의 범위 역시 넓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이에 필요한 자격증 취득에 열정을 쏟은 것이다.현재 그는 벌룬아티스트 1급, 톨페인팅, 캘리그라피, 냅킨아트, 예쁜글씨POP, 폼아트, 키즈파티플래너, 청소년상담사, 건강체조지도자 등 28개에 달하는 자격증 취득했다.자격증이란 구체적인 골격이 완성되자 장 대표는 '평생교육플래너'로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평범한 주부들을 당당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2의 삶을 전하는 나침반 역할에 나선 것이다. 한국공예 문화교육센터와 한국진로직업체험센터를 통해 평생교육플래너·교육컨텐츠 디렉터로서의 탄탄한 기반을 다진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일대기를 뜻하는 '주부역전스토리'라는 상표등록까지 출원을 앞두면서 화려한 주부, 방과후 강사에 이은 제3의 인생에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장 대표는 "코로나19로 사회 전반이 암울하다. 지금은 우울감을 이겨 낼 자신감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며 "이를 위해 소통해 온 선생님들을 정직원으로 채용해 안정화된 교육단체를 갖추고 울산과 대구에 이어 전국에 지사를 구축할 계획이다. 쇼핑몰도 갖춰 교육에 필요한 수공예제품을 활성화시킬 계획으로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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