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던 1992년 12월, 기쁨에 겨워 목이 터지토록 '목포의 눈물'을 부르던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17년만에 이번엔 슬픔의 젖어 또다시 '목포의 눈물'을 목놓아 부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고향인 신안 하의도에서 젊음을 바친 목포와 영산강 뱃길을 따라 5월 '핏빛 항쟁'의 거리인 금남로에 이르기까지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면서 광주.전남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이어 또 한번 거대한 슬픔의 바다로 변했다.
현직 대통령 최초로 5.18 묘지를 찾고, 퇴임 후 첫 지방 나들이 때 들릴 정도로 DJ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는 정신적 지도자를 잃은 슬픔에 일반 시민은 물론 학계, 시민단체, 경제계 할 것 없이 크나 큰 상실감에 빠졌다.
5.18기념재단 윤광장 이사장(67)은 "여야 대립과 경제 위기, 노사 갈등 등 꽉 막힌 '터널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줘야 할 큰 어른이 돌아가셔서 가슴이 미어진다"며 "통일의 물꼬도 트신 분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일반인 면회가 허용되면 한걸음에 달려갈 생각이었다"며 진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 총동문회 김영수 회장(57)은 "지역은 물론 나라의 큰 별이 스러졌다"며 "국부(國父)를 잃은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비통해했고, 전남대 최영태 교수(55)는 "김수환 추기경과 노 전 대통령에 이어 또 한 번의 국가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시민사회단체는 김 전 대통령이 병세가 악화되기 전 올 10월께 광주 초청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광주전남본부 장화동 집행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특별한 역할을 했고 그분이 타계한 것은 민족에게도 불행"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4선언 2주년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의 광주강연회나 특강을 계획했었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김영삼씨는 "호남인에게 희망고리 역할을 했던 김 전 대통령이 타계해 너무 안타깝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종교계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조비오 신부는 "더 오래 생존하셔서 어지러운 세상에는 조언을, 잘못된 일에는 채찍을 가해주시길 바랬는데 이렇게 가셔서 한없는 슬픔이 밀려든다"며 "천국에서도 나라를 위해 힘써 주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인 법일스님은 "현대사의 산증인이자 민주화와 남북화해, 역사 바로잡기에 몸을 아끼지 않은 분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은 국가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며 "나라의 위기때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는 또 한 명의 어른을 잃어 슬픔이 크다"고 밝혔다.
대통령 당선 당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조촐한 축하파티를 벌어졌던 시내 곳곳의 기사식당에서도 눈물어린 애통함이 그날의 환희를 대신했다. 한 택시기사는 "나라의 어른들이 하나 둘 떠나 허전하고 쓸쓸하기까지 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터미널과 공항은 물론 식당과 찜질방 등지에서도 DJ 서거와 관련한 '슬픈 이야기꽃'이 곳곳에서 피어났고, 시민들은 TV와 신문, 인터넷을 통해 '인동초(忍冬草) DJ'의 파란만장한 삶의 발자취를 되새기며 고인이 된 그를 추모했다.
회사원 박모씨(40)는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과 4전5기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고된 역경, 5000년 역사상 최초로 노벨평화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말그대로 DJ는 '한국의 넬슨 만델라'였다"며 "그의 드라마틱한 발자취가 국가발전의 소중한 자양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