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성전환 수술한 고 변희수 전 육군 하사에게 강제 전역 처분을 내린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와 군은 법령 개정 등 후속조치를 이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대전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오영표)는 지난 7일 변 전 하사가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강제 전역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재판부는 "변 전 하사는 수술을 마친 후 청주지방법원에서 성별 정정을 허가받아 여성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전역 처분 당시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여부 판단도 여성 기준으로 봐야 한다"라며 "성전환 수술 후 변 전 하사의 상태를 남성 기준으로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사유에 해당해 육군 판단이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라고 말했다.이에 육군은 "재판부의 이번 판결을 존중하며 법원의 판결문을 확인 후 향후 조치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육군은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부 분위기상 항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이로써 육군은 지난해 변 전 하사에게 내린 전역 조치를 비롯해 기존 법령과 규정을 모두 재검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변 전 하사는 군 복무 중 자신의 성 정체성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심리 상담과 호르몬 치료를 받다가 2019년 연말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변 전 하사는 여군으로 복무를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부대 복귀 후 군 병원에서 받은 의무조사 결과 전역대상에 해당하는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육군은 지난해 1월22일 전역심사위원회에서 음경·고환 결손 등을 이유로 "군인사법 등 관계 법령상의 기준에 따라 계속 복무할 수 없는 사유에 해당한다"며 변 전 하사를 전역시켰다.같은 해 8월 변 전 하사는 육군을 상대로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변 전 하사는 올해 3월 청주 상당구 금천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이번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육군의 향후 대응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사안은 법령 개정이다.현행 법령에 따르면 성전환자의 군 입대는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병역법, 군인사법, 국방부령인 병역판정 신체검사 중 검사규칙 별표 5, 육군규정 등이 성전환자 입대를 차단해왔다. 그러나 이번 법원 판결이 성전환 군인을 전역시켜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성전환자 입대를 막을 근거가 취약해졌다. 이에 따른 법 개정과 후속 입법이 불가피해졌다.또 남성 군인이 음경과 고환을 상실하면 장애인으로 규정해온 기존 규정들이 바뀌어야 한다. 육군은 변 전 하사 사건 대응 과정에서 음경과 고환을 상실하면 현행법 상 심신장애 등급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이제 규정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현행 군인사법 시행규칙 제53조에 따르면 음경 상실과 고환 결손을 합한 심신장애 등급은 3등급이다. 10등급은 복무 가능 등급이지만 1~9등급은 전역이나 제적 대상이다. 이 같은 규정을 적용하면 변 전 하사는 명백한 전역 대상이라는 게 육군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법원 판결이 이 같은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상 시행규칙 개정이 불가피하다.그간 변 전 하사 측에서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변희수 공대위는 "남성 군인이 사고로 한 쪽 고환을 잃게 되면 평형감이나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고환이 손실되면 남성 호르몬이 안 나와서 호르몬 교란이 생길 수 있다. 이 규정은 그런 사람을 전역시키라고 만든 규정"이라며 "이미 여성이 된 변 전 하사는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결정문에서 "성전환 수술 사실을 심신장애의 한 사유로 규정하게 된다면 이는 성정체성에 기초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군인사법 시행규칙 내용을 비판했다.김용민 배재대 공무원법학과 박사는 '성전환 수술 부사관 강제 전역의 의미와 과제' 논문에서 "현재 군이 강제전역의 근거로 활용하는 의료기준은 개개인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임무 수행의 가능성을 간화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며 "합리적 근거 없는 자의적 차별에 해당해 헌법상 평등 원칙 위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또 다른 과제는 성전환자와 다른 부대원들 간 융화 문제다. 육군은 그간 부대원과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다며 성전환자 전역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에 따라 이 같은 입장을 일부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육군본부 법무실은 지난 4월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성전환 수술에 따라 타 부대 전입을 가더라도 다른 부대원들이 원고가 성전환 수술을 한 사실을 알게 돼 융합하기 어렵다"며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점에 비춰 부대원과의 융합 측면 등을 고려 시 군에서의 활용성과 필요성 부분에 있어서도 현역복무가 제한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아울러 "원고가 계속 복무를 하게 되는 경우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원고와의 공동생활로 인해 다른 인원들이 느끼고 부담해야 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간과하는 것은 원고를 위해 그 외의 인원들에게 희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원고의 행복추구권만을 고려해 다른 이들의 행복추구권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었다.이에 대해 변 전 하사 측은 부대원과 융화에 문제가 없다고 항변해왔다. 변 전 하사 측은 성전환 수술 전에도 여성 호르몬 약을 투여하면서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으며 분대장 역할까지 맡았다고 밝혀왔다.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변 전 하사 손을 들어줌에 따라 육군은 성전환자 인사에 관한 원칙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 국가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보직 조정, 영외숙소 배정, 부대 배치 전환 등 군 인사행정 계통을 통해 해결해야할 문제지 전역 처분의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며 군의 과제를 미리 제시해줬다.마지막 과제는 성전환자가 남군 또는 여군으로 변경할 때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차별과 불공정 문제를 차단하는 것이다.그간 육군은 변 전 하사를 여군으로 전환하는 것이 일종의 특혜라고 봐왔다. 타 여군은 별도의 선발 과정을 거쳐서 군인이 되는데 변 전 하사만 이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특혜가 된다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도 변 전 하사 측은 특혜로 보기 어렵다며 반박해왔다. 변희수 공대위는 "대학 편입생을 가리켜 불공정하다고 하지 않는다"며 "남군이 여군이 되면 오히려 정원이 줄고 진급 기회가 줄어든다. 여군이 남군보다 훨씬 진급하기 어렵다. 기존보다 처우가 안 좋아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이 같은 과제들은 육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군이나 공군, 해병대에서도 성전환 수술 후 지속 근무를 원하는 인원이 언제든 나올 수 있다. 국방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국방부는 변 전 하사 사건에 따른 법령상 미비 등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 안에 연구용역을 추진할 방침이다. 국방부가 성전환자는 물론 기존 군인들의 임무 수행 여건을 보장할 수 있는 묘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