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물은 원자력 발전 과정에 나오는 엄청난 방사능이 남아 있는 폐기물을 말한다.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계획을 내놨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어디에 세워야 할지, 지역을 선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30년 넘게 가동 중인 월성 원전 발전에 쓰인 '사용 후 핵연료'들이 포화상태에 놓이자 사용후핵연료 조밀 건식저장 시설인 맥스터 시설로 보관하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는 엄청난 양의 방사능과 열이 남아 있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다. 한빛과 고리, 한울과 신월성 원전 등도 2038년까지 같은 처지가 된다. 고준위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정부가 구체적인 처리 계획을 내놨지만 국민들의 이해가 쉽지 않아 산 넘어 산이다.
계획대로 라면 2028년까지 부지 선정을 마치고 2053년에 첫 가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지만 그사이 넘치는 폐기물은 2035년 같은 곳에 지어지는 중간저장시설로 옮겨진다는 막연한 계획뿐이다. 문제는 안전성에 대해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필요한 핵심 관리기술을 적기에 차질없이 확보해야 한다. 중저준위 시설인 경주 방폐장 건설에 19년이나 걸린 점을 감안하면 부지 선정 과정이 국가적 난제가 될 수밖에 없다. 베사 라카니에미 핀란드 에우라요키(Eurajoki) 시장이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운영을 위한 조언이 가슴에 와닿는다.
한국 원자력환경공단을 찾은 베사 시장은 경주 시민과 가진 간담회에서 고준위 방폐물처분시설은 주민-시-정부기관-원전 관련 공공기관 간의 신뢰 구축과 투명한 정보공유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운영을 위해 1978년부터 꾸준히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 에우라요키시는 핀란드 남서부 연안 도시로서 원자력 발전소 3기와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장이 운영 중이다. 2025년부터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이 운영될 예정이다.
베사 시장의 발언을 요약하면 고준위방폐물 처분장을 추진할 수 있는 배경에는 높은 주민 수용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에우라요키시 주민들은 원자력에 대해 깨닫고, 원전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상세한 정보를 꿰뚫고 있다. 주민들은 국가기관보다 원전에 대한 지식이 훨씬 더 많다. 주민들이 원자력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베사 시장의 발언은 원전 문제와 관련해 끊임없이 은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국내의 원전 정책과는 대비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원자력 관련 정책에 대해 경주시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부지 선정은 말도 꺼내지 못한다. 지난 2005년, '경주 시민들이 중·저준위 폐기시설을 받아들일 때 2016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반출 약속도 불이행했다. 아직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떠안고 있어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은 상태다. 원자력 관련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해도 여전히 관련 기관의 정보공유가 되지 않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해결은 원전 관련 공공기관 모두가 투명해야 한다. 당장 오늘부터 정보를 공유하고 공개하는 모습을 보일 때 고준위 문제도 한발 앞으로 다가설 수 있다.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