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 어머니 급(伋)씨가 맹자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하여 이사를 세 번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교육적 의미를 함의한 전래의 이야기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맹자가 처음 살 던 지역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공동묘지는 거의 매일 같이 상여(喪輿)가 오는 곳이므로, 그곳에서는 고인이 된 사람을 안타까워하면서 곡소리를 내며 슬픔을 나타내었기에 어린 맹자가 통상적으로 보아온 것이 장래 하는 것이었으므로 자기도 곡소리를 내며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보았던 맹자어머니는 비록 생활이 군색하였지만 공동묘지 부근은 자녀교육에 좋은 시범을 보여주는 곳이 못됨을 판단하고, 시장 근처로 다시 이사를 하였다. 이곳에서 맹자는 유감스럽게도 물건을 사고파는 상점놀이에 열중하여 장사하는 흉내를 내고 있어서, 자녀 교육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시 이사를 하였던 것이다.   맹자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놀이를 하는 것을 본 맹모는 환경이 자녀교육에 미치는 힘이 큰 것을 깨닫고는 다시 서당이 있는 조용한 곳으로 맹자를 데리고 이사를 또 한 번 했다. 그랬더니 맹자는 서생(書生)들의 매일 같이 독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자기도 책을 보고 글을 읽으면서 독서삼매경에 몰입하여 군자의 길로 가게 되어 맹모는 이제 좋은 곳에 이사를 왔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환경은 개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개체의 외계(外界)를 말한다. 개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외계는 그 개체의 환경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환경은 자녀교육에서 미치는 힘이 크기 때문에 중요시한다. 맹자가 오늘날까지 추앙받는 성현이 된 것은 어머니의 교육적인 환경안목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맹자의 생몰(生歿)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공자 신후(身後) 100년쯤 뒤 추(鄒) 나라, 즉 현 산둥성 쩌우청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노나라 환공의 서장자(庶長子)인 경보(慶父)의 후손이었다. 활약한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4세기 전반기다. 맹자는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로 가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에서 육경을 배웠으며, 40세 이후에 인정(仁政)과 왕도정치를 주창하며 천하를 유람했다.   맹자의 사상은 하늘이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낳고 그 피조물을 지배하는 영원불변의 법칙을 정해 이를 만물창조의 목적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하늘의 법칙성이 내재하고 있어서 하늘이 정한 법칙의 달성이 인간의 목적이라는 것이 맹자의 기본적 인간관이라고 하였으며,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던 것이다.   공자는 예를 실천하는 인간의 주체성을 '인(仁)'이라고 하였으나 맹자는 '인이란 사람으로서의 덕(德)'이라 하고, 특히 그것이 위정자에 의하여 실현될 것을 강조하고 있어서 공자의 사상을 나름대로 발전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맹자는 공자와 더불어 중국 최고의 사상가로 존경을 받게 된 것은 그 이면에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낳은 자식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그 교육에 정성을 다하는 부모들이 자고(自古)로 많았다. 오늘날 서울의 경우 강남이나 목동엔 맹자의 어머니 이상으로 자녀의 진학에 모든 열과 정성을 올인(all in)하는 어머니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이웃집의 셋째 자부(子婦)가 아들 쌍둥이를 낳아 양육 때문에 그 귀한 직장을 사직(辭職)하고 그들을 힘들게 키우며 서판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마치고는 학군이 비교적 좋다는 광장동으로 전세 이사하여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시켜서 맏이는 미술적인 재능이 발견되어 선화예술중학교에 입학시켰다. 그 후 3년간 교육 뒷바라지를 잘 하여 같은 학교법인인 선화예술고등학교 입시에 무난히 합격시켰고, 둘째는 광남중학교를 졸업시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래서 두 아들의 학교 위치와 방과 후 학원 수학에 다소라도 편리함을 주고자 다시 전세를 얻어 이사를 하였기에, 이 빅 이벤트(Big Event)를 ‘어느 자부의 삼천지교’라 명명해 보았다. 이런 반가운 소식을 들으니, 세칭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 갸륵한 모습에 칭찬을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맹자는 공동묘지가 있는 출생지에서 생사(生死)의 도를 알게 되었고, 시장 근처에 살 때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 맹자를 완성 시키는 데 환경적 영향이 작용되었다는 그 숨은 의미를 살펴 주기를 바라고자 한다.인간의 힘에는 근력(筋力), 지력(知力), 금력(金力)이라는 세 종류가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확실하게 지녔다면 생계를 꾸려가는 데 별 무리는 없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려면 학문적인 지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특히 국가 사회의 직업풍토가 명문대학교 출신을 우선시 할 때는 입시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재학3년은 무서운 경쟁의 시련을 겪는 힘든 인생역정이다.    그래서 학부모 모두는 맹모삼천의 실천지인으로 국가의 발전을 위한 동량적 생산주(生産主)라 여겨진다. 쌍둥이 형제 모두를 명문고등학교에 입학시키기까지 세 번 전세이사(傳貰移徙)를 한 이웃 자부님의 모성역할에 늦었지만 존경의 박수를 보내면서 가세번연(家世蕃衍)과 일취월장(日就月將)을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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